전쟁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전쟁의 잔학함을
모른다.
형제가 서로 총을 겨누어야
했고,
화약과 피비린내 진동했던
살육의 현장,
죽어서 부패되어가는
어머니의 젖을 어린아이가 빨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처참함을,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전쟁고아가 되어 다리
밑에서 거지아이로 살아야 했던 비참함을,
포화 속에 헤어진 가족을
잃고 지금도 이산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질긴 이별에 아픔을,
폐허가 된 땅에서 가난에 굶주리며 살기 위해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등에 붙은 배를 채우며 살아야 했던 헐벗고 굶주려본 경험을 해보지 않고야 전쟁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경험이야 말로 그 방면에
산지식이기에 나이 드신 분들이 살아오면서 겪어온 경험을 소중하게 듣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급변한 세상은 그러한 경험 따위에 연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들으려 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배고프게 살았지?”
“왜 전쟁을
했지?”
서로
“한민족끼리,
평화롭게 살면
되지.”
하며 쉽게 생각해
버린다.
살아오면서 겪어온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
하면,
그 자체를 믿지 못하니까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단다.
모든 것이 불신에서부터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언제부터인가 최고의 배움은 체험으로
이어진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온갖 체험전성시대의 나라가 되었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무서움만 가득하여 그
대처 방법으로 평화로 얼버무리고 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고 외교적 능력으로 공존공생을 구해야한다.
구걸하여 임시 얻은 평화는
언제나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굶주리며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을
모른다.
그들은 아주 쉽게 단식을
체험한다.
그것도 살을 빼기 위해서
하는 단식요법이거나,
아님 어떠한 욕구를
쟁취하기 위한 단식투쟁일 것이다.
밥을 일부러 굶는다.
소위 단식투쟁을 하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은 많은데 일부러
안 먹는 것이기 때문에 굶는다는 것이 다 같을 수 없다.
자유를 누리며 살면서도 자유가 진정 무엇인지
몰라서,
감옥생활을 체험하는 내안에
감옥이라는 체험영업을 하는 곳도 생겨나서 성업 중이란다.
돈을 내고 스스로 작은 감옥 방에 들어가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 방안에서만 생활함으로서 자유라는 것을 체험하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서
죽어보는 체험한단다.
공산주의도 체험하여 보아야
알고,
사회주의도 체험해 보아야
알 수 있는 건지 이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적은 무기를
만들고 있는데,
평화를 위해서 전차방호벽도
허물고 경계초소도 없애고,
저들은 이산가족도 만나지
못하게 하는데,
철도를
연결하잔다.
편지 한 장 보낼 수 없고,
서로 경계하는 적을
애정으로 끌어안아 주잔다.
아마도 평화의 체험을 많이
해보아야 할 것만 같다.
조선왕조 한때는 왕권 강화를 위해 승정원이 득세를
하니 9부6조3사가 제 할일을 안 하고 눈치만 보던 때가
있었는데,
이러한 과거는 체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라 같은 나라를 만들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주겠다.
는 약속을 기억하며 좋은
체험을 기대하고 있지만,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