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둥지

돌 박사 2016. 6. 20. 12:14

 

                < 콩트 >                                            둥 지

                                                                                                                        석 도 익

 

나의 아름다운 날개로 높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을 수 있을 때 얼마나 자랑스럽고 무지개 꿈에 부풀었는지 모릅니다.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꽃만큼이나 더 많은 행복과 하늘 구만리 뿌려 놓은 듯이 반짝이는 별들보다 더 많은 꿈을 꾸며 노래했으니까요.

더욱 정신 못 차리게 행복했던 것은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해주는 그이를 만나고 나서 사랑과 기쁨, 그리고 슬픔과 고독, 미움과 질투를 함께 배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둥지를 원했습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우리 둘만이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우리의 둥지를~ 그이와 나는 부리가 닳아 뭉개져도 날개깃이 듬성듬성 빠져나갈지라도 우리의 둥지를 짓는데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 바람, 눈 이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의 요소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우리의 둥지는 완성되었습니다. 튼튼하고 아늑한, 그이와 사랑의 보금자리였습니다. 그이는 둥지와 밖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필요한 모든 것을 열심히 날라다 둥지 가득 채워 나가고 나는 알뜰하게 꾸리고 새끼를 키우며 아름답고 따뜻하게 우리의 둥지를 가꾸어 나가는데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노란 주둥이로 열심히 먹이를 달라 하던 어린 새끼도 다 자라서 날기 연습을 한다고 멀리까지 날아가곤 합니다. 그들도 머지않아 이 둥지를 떠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여름 청록색의 무성한 그늘도 암갈색의 가을로 변하여 우리의 둥지를 가려주던 아늑함도 점점 뚫려가고 엷어지는 햇살이 스산한 바람에 나부낍니다. 우리의 둥지에도 바람을 느낍니다.

모두 다 꺼내먹고 비워진 시장바구니 같이 헤벌어지고 우굴 찌글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알사탕 같이 달콤하게 녹아내리던 짧은 순간들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 없습니다. 소태 같은 맛들이 지난 세월을 다 지워 버려서 마냥 쓰기만 하니 자꾸자꾸 눈물이 나고 무작정 외로운 마음은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져 버립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나의 인생은 어디 가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고독과 외로움, 슬픔, 그리고 아쉬움, 따위의 단어들을 모두 집합시켜 두루 뭉실하게 놓아도 딱히 적당한 말이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억울합니다. 심술이 납니다.

그이는 마냥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넓은 밖의 세상에서 예쁜 꽃과 시원한 바람 속에서 마음대로 날아다니다 둥지에 돌아오면 제왕으로 군림하는 그이가 밉기만 합니다.

자기가 뭔데 날 사랑한다면서 우린 평등해야 되지 않는가?

?내 청춘 보상해 줘요. 나는 당신의 무엇인가요.?

그이의 이름 세자에 가려 자신은 어디 가고 그림자만 남아 있습니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이가 있어야 자신이 보입니다. 둥지에 걸린 그의 문패가 자신을 꼭 가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빠삐옹이 갇힌 감옥처럼 갑갑하고 무한궤도에 표류된 난파선 안에 혼자 남은 선장 같은 외로움이 닥쳐옵니다.

둥지 밖 푸른 하늘에는 선남선녀가 쌍쌍이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아~저곳에는 내가 지금껏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꿈과 낭만이 숨 쉬고 찬란한 행복이 숨어 있을 거야. 누구에게도 줄 수 없고 아무도 못 찾을 나에게 배당된 내가 찾아야할 나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오색 무지개다리를 놓고 생각의 선율은 오선지 위에 음표를 만들고 행복의 전주곡이 속삭임처럼 울려 퍼지는 환상을 봅니다.

내 일생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었고 절반도 나의 것이 아니었던 희생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어.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나이지 그 누구의 대신할 수 없는 것, 진정한 나를 찾아 나의 즐거운 인생을 살자! 가자! 가자! 희망의 나라로 !

나는 둥지 구석에 팽개쳐져 있던 텅 빈 볼품없는 시장바구니를 찾아들고 둥지를 힘차게 걷어차고 날아오릅니다.

푸른 하늘은 끝없이 넓고 높은데 황금들판은 오곡이 풍요로워 가는 곳마다 풍악이 울리고 잔치가 벌어져 떼 지어 먹고 마시고 즐거운 한편에는 겨울의 서리를 품은 바람이 무질서한 사선을 그으며 유괴의 덫을 치고 아름다운 노래와 황홀한 깃털로 유혹한다.

아~ 아름다운 세상 즐거운 인생, 왜 그 어두운 둥지에서 진즉 헤어나지 못했던가? 나의 눈은 이미 애욕이 동공을 가득 메워 흐려진 눈빛으로 무질서한 높새바람에 뒤뚱대며 무리들을 따라 변화를 누비다 끝내 허수아비도 없는 벌판을 지나 금고기가 산다는 황금 연못가에 쳐놓은 그물에 목이 걸려 날개만 퍼덕대고 있어야만 했다.

짧은 해는 서산을 넘어 제집으로 들어갔고 새들도 제 둥지를 찾아 가버린 뒤 울창한 숲에서 땅거미가 기어 내려와 나머지 빛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그물에 걸린 나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 조여 오는 목에 매달린 몸뚱이를 뒤채어 보지만 그것도 마음뿐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그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새끼들이 지금쯤은 둥지에 모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아련히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더 날개를 파드득거리다 끝내 축 늘어지며 깊은 꿈으로만 하염없이 날아간다.

나의 눈에는 마지막 어둠이 서서히 이 세상 모두를 먹어 버리기 시작하는걸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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