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스크랩] 화진포 야화

돌 박사 2015. 3. 20. 22:01

 

                               화진포 야화

                                                                                                   석 도 익

 해당화 붉은 꽃빛이 조개가루고운 백사장을 붉게 물들이는 명사십리, 검푸른 파도가 남실 밀려와서 모래위에 찍혀진 갈매기의 발자국까지 말끔히 지워놓고 저만치 밀려간다.

 거센 파도소리를 잠재우는 노송군락, 그사이로 살짝 보여주는 잔잔한 호수위에 햇살이 부서져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 한낮에도 영롱한 별빛을 그곳에서 볼 수 있다. 태고부터 있었음직한 나지막하고 조그만 양옥한 채, 거기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을 마쳐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어둠의 역사 기억저편에서 숨죽여 있는 분들이 한때는 휴가철 가족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산새소리조차 작은 주위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숲이 우거져 더욱 외딸게 느껴지는 건물은 온통 바위담쟁이가 덮여서 습기마저 저장되어 있는듯하여 왠지 이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숨어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주위가 그러하니 사랑하는 사람과 슬쩍 들어가 잠시 주위에 망을 보고 살짝 포옹하며 가벼운 키스 라로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었다는 권력을 가졌던 제1공화국 자유당시절 부통령인 이기붕과 당대의 신여성이며 교육자로 미모에 명성을 날리던 부인 박 마리아 가족이 별장으로 사용했을 만치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여 양아들로 삼았던 이강석이 아버지 어머니를 쏘아죽이고 자신도 따라가는 것을 끝으로 막은 내려졌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근대사 질곡의 역사를 그려낸 그림이 화진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진포 호는 동양최대의 석호로 북쪽에 하나 남쪽에 하나 두 개로 되어있고 지도상으로 보면 두 개 호수의 분단 면은 태극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36년을 나라 잃은 설움으로 보내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자력이 아닌 열강의 전리품에 속하게 되어 동족이 나누어져 적이 되어야 하는 분단의 운명이 되어버린 38선은 한반도를 두 조각으로 잘라버렸다.

 1945년 초 독일이 항복한 후 연합국은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일본이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미국은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8월 6일과 9일에 일본 본토의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岐)에 각각 원폭을 투하했으며, 소련도 8월 9일 선전포고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때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종래의 계획을 바꾸어 일본군 무장해제와 군사적 점령이라는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미군과 소련군의 작전경계선을 신속히 설정하기로 하였으며, 1945년 8월 11일 국무부·육군부·해군부의 3부조정위원회가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실무를 담당한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대령과 딘 러스크(Dean Rusk) 대령은 이날 새벽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지의 1942년판 지도를 보고 한반도에서의 미·소 작전담당 구역의 분할 선을 북위 38도선으로 정하기로 하였고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남과 북은 미소 군정에 들어갔다.

 북쪽을 점령한 소련군은 김일성을 내세워 사회주의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적화통일을 준비하기에 이르렀고 미군정이 실시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수립하였다.

 38선 북쪽에 위치한 화진포는 바다와 호수 그리고 산이 함께 어우러진 천하에 명승지다. 하루아침에 제왕으로 군림한 김일성은 기암절벽을 등진 산자락 송림 사이에 1938년 독일인이 성벽처럼 건축한 화진포 성을 그의 별장으로 하고 여가를 가족과 함께 즐기던 곳이다.

역사는 평화에 머무르지 않고 준비했던 남침을 감행함으로서 처절한 동족상잔으로 피를 뿌리고 삶을 잿더미를 만들고 나서야 휴전을 하게 되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진격한 결과 천혜의 휴양지 화진포도 수복되어 이승만 대통령이 휴가철 이용하던 별장은 김일성 별장을 지척에서 바라 볼 수 있는 북쪽산자락 태양을 제일먼저 받고 있는 곳에 있다.

 그의 소박한 심성과 같은 이미지가 풍겨오는 별장에 올라보면 남쪽을 바라보며 전후 가난한 나라의 희망을 구상했을 노 청치인의 박복했던 일생과 함께 진하게 물들어 오는 석양의 노을을 볼 수 있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북을 향해 지어진 성곽의 별장에서 김일성은 어디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격랑의 역사에 기로에서 양쪽에 통치자가 된 이승만과 김일성, 민주주의를 표방한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집권 독재자로 몰려서 하야해야 했고, 공산당을 앞세운 희대의 독재자 김일성은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어 죽어서도 썩지 않고 유훈통치를 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과 초대 두정상의 별장, 그리고 그 가운데서 천국과 지옥을 모두 공유한 비극의 주인공 이기붕 일가. 이런 사연들은 화진포에 응어리진 역사로 새겨져 오늘도 파도는 몸부림치며 바위에 부딪쳐 멍들어 시커멓게 밀려오고 쓸려가는 물결에 명사십리 해당화도 세월에 절이어져 꽃망울이 노년의 머릿결같이 성성하게 느껴진다.

 바다의 짭짤하고 비릿한 안개가 송림으로 모이고 호수의 눅진한 창포안개와 만나서 머리 풀고 교합하니 발가벗은 몸이라도 살짝 싸안아 천국의 계단에 누이고 덮을 만큼 포근하고 음습한 화진포의 밤, 혼령이 된 남과 북의 두 영웅들이 만나서 화진포 앞바다에 담긴 달과 호수위에 비친달 그리고 하늘높이 떠있는 세 개의 달을 바라보며 담소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어떤 화제로 이어갈까 궁금하다.

 개국 부통령 이기붕 가족들도 뜬구름 같았던 전생을 화진포 별장에 와서 생전에 회한을 풀었으면 좋으련만. . . .

출처 : 화양의 예맥 (한국문인협회홍천지부)
글쓴이 : drdol(돌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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