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보호자는 바뀌게 된다.

돌 박사 2016. 3. 26. 21:42

 

 

             <인생칼럼> 보호자는 바뀌게 된다

                                         소설가  석 도 익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며 군대 보내고 혼인을 할 때 까지는 부모가 당연히 보호자다. 자식도 커서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면 아내의 보호자는 남편이 된다. 그러나 남편이 아파서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간다면 아내가 남편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보호자는 보호해야할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간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때문에 그 임무는 실로 막중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따라서 생과 사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란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군대에서는 선임부터 대장까지 직장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의 보호자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호해야할 형편에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꺼이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감금하여 다 죽어가던 어린이가 구출된 사건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까지 장기결석학생을 추적하고 있는데 사건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 사회를 경악케 하고 있다. 어찌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 아이들의 가해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들의 부모란 사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보호자(保護者)란 글자 그대로 안전하게 지켜주고 마음과 몸도 편안하게 해주고 도와주는 것이며 따듯하게 감싸주고 덮어주며 무리를 통솔하며 함께 거느리고 가는 사람이다.

 지난여름 자식들이 한적한 섬으로 가족휴가를 가잔다. 아들 내외와 딸 내외가 의견을 일치하고 딸아이가 살고 있는 서해안으로 부모를 모시고 가겠단다.

 아들 차에 내외가 동승하고 아들 며느리 손자가 서해안에 딸이 이미 준비해 놓은 섬 펜션에 분가해 살던 세집 한 가족이 다 모였다.

 직장생활을 할 땐 해마다 아이들 데리고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필자가 당연히 보호자였다. 어디로 언제 어떻게 가고 무었을 하고 어떤 것을 먹고 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데리고 다니며 보호했던 보호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부모의 보호자 노릇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 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출한다. 그만큼 힘과 경제력이 부모를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니 믿음직하고 안심은 되나, 무언가 모를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뭔지 모르겠다.

 하긴 백수를 바라보고게시는 어머니가 칠순의 문을 여는 나에게 밥은 먹었냐? 용돈은 있니? 운전조심해라. 하시며 무엇이던 더 먹이고 싶으시고 밖에 나가다니는 것이 염려스러워하시며, 팔남매나 되는 자식과 거기에 줄줄이 달린 애들까지 살피려 하시는 마음이 부모는 자식이 같이 늙어가도 아이 같아서 언제까지 보살펴주고 싶은 보호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