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칼럼>
어머니도 여자였다
소설가 석 도 익
어머니는 그날따라 할 이야기가 많으셨다. 멀리서 사는 넷째 아들네나, 혼자 살고 있는 셋째 딸 걱정은 맨날 하시는 거라 그냥 흘려들으면서, 백수를 바라보시는 분이 회갑이 지난 아들딸 걱정은 이제 좀 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개들은 어머니가 걱정하시지 않아도 잘살고 있대요.” 하고 길어지시는 말씀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런데 어머니는 느닷없이 “애야 내 얼굴에 뭐가 나는데 자꾸 커진다. 좀 봐봐라” 하신다.
가을날 은행잎처럼 곱게 늙어 가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천생 조선의 여인이시다. 긴 치맛자락 코고무신에 찰랑거리며 뛰어가신다 하더라도 주위에 바람이 일어나지 않게 사뿐히 가시고, 현재는 막내딸 꼬임에 빠져 긴 머리 뎅겅 자르고 볶아버린 파마머리에 현대 할머니로 변해있지만, 언제나 반듯하게 가르마 곱게 빗어 올려 쪽찌고 은비녀 꽂은 머리하며, 사대부집 현숙한 마나님의 모습이셨다.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았다. 윤기 없는 주름진 얼굴에는 언제부터 인지 검버섯이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아들이 맞는가? 이제야 어머니 얼굴을 자세하게 보며 죄송스런 마음에 콧등이 시큰했다.
“어머니 이건 검버섯이네요”
“그래? 그런데 처음에는 조그맣더니 자꾸 커진다.”
“어머니 이건 병이 아니래요 나이 들면 피부가 제 기능을 못해서 그렇게 되는 거라고 하던데요”
내가 뭐든 잘 안다는 식으로 어머니를 설득하려는데 어머니는 웬만한 것이면 “그러냐?” 하고 말 일이었지만 그게 아니셨다.
“이런 것도 병원에 가면 고쳐준다더라” 하신다.
실은 이 말씀을 아들에게 하기위해서 얼마나 벼르고 별러서 하신 말씀인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무엇 하나 해달란 말씀 하신 적 없고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사양하신 분이다.
그때 당연히 “네 어머니 고쳐드릴게요. 저랑 언제 가시지요” 하고 대답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실은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제일먼저 떠오르고 며느리 딸 형수 제수씨들,,, 집안에 모든 여자얼굴이 무차별로 떠올라서 백수에 근접하시는 어머니 얼굴에 검버섯을 빼드린다고 선뜻 대답해 드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며, 국민연금도 조기에 받아서 반액으로 나와 용돈도 모자라니 축의금은 자식들이 가끔 주는 용돈으로 사람구실하고 있는 내 처지니 더욱 크게 대답 못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현대를 같이 살고 계시는 어머니가 현실을 모를 리는 없다. 어디서건 아름다워 지려고 성형천국인데, 검버섯은 쉽게 제거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터에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난 여자들에 대해서 둔한 편인지 아직까지 화장품을 사본 기억이 없어 어머니께 어떤 것을 사다드려야 할지 몰라서 내가지금 쓰고 있는 종류의 스킨과 로션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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