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른단다. 그것도 명문 학군이나 전철역이 생긴다. 또는 대규모 무슨 센터가 생긴다는 소문이 나면 집값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고 한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내 집 마련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다. 아무리 신발 벗고 맨발로 뛰고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하여도 아파트 값을 물고 높게 날아가는 새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다.
하긴 요지에 있는 아파트 한 가구에 몇 십억이라니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왜 하필이면 비싼 곳에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지? 시골이나 변두리에 아파트나 집들도 많을 터인데....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나 더위를 피하고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것이 집이다.
어떤 동물은 남이 지어놓거나 자연히 이루어진 곳을 이용하기도 하고 또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방 삼아 사는 것들도 있는가 하면 뻐꾸기는 자신이 집을 짓지 못하는지 아니면 자식을 키우지 못해 그러는지는 몰라도 “붉은 머리 오목눈”이라는 작은 새의 집에 자신의 알을 낳고 육아를 위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들이나 아주 작은 벌레까지도 자신의 집을 짓고 살기도 하고 또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하여 집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같이 이들은 자기가 필요한집 하나밖에는 짓지 않는다.
우리도 대가족이 모여 살 때에는 방수를 늘려 살았지 분가하지 않는 다음에야 한가정이 한 개 이상의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에 이르러 한사람이 수십 채 많게는 수백 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사람이 그 많은 집이 뭣 땜에 필요한가?
이제는 집이 단순히 주거공간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나가는 수단인 것이다.
어떤 집에 사는 누구, 라고 할만치 집이 사람을 만드는 세상에 부의 척도를 자랑하려고 호화스럽게 꾸민 집을 선호하는 재력가 말고는 말이다.
내가 아는 대학교수 한분은, 자기는 “아내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부끄러운 자랑이라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지방대학에 근무하는 그는 집이 서울에 있어 아내와 떨어져 살며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에 있는 집에 간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녀들이 보고 싶어 집에 가는 날이면 바삐 서두르는데 가끔은 자기 집을 못 찾아 길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헤매는 때가 종종 있었단다.
아내가 전화로 “자기 이번에 집에 올라올 때는 전번 집으로 오지 말고 역삼동 어디로 해서 어디로 와요. 왜냐하면 지난주에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라고 일러준다.
그는 아내가 일러 준대로 찾아갔지만 당시만 해도 노고지리 높게 날며 울어대는 잡초 무성한 벌판에 어쩌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만 띄엄띄엄 있을 뿐 이었다. 아내가 집을 사고 이사 간 곳은 쓰러져가는 농막 같은 집이었는데 인적도 드문 그곳을 물어물어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어찌 되었건 몇 년 사이에 그곳도 천지가 개벽하리만치 바꾸어지니 아내는 다시 새 주소를 일러주었고 그는 또 서울 변두리로 이사 간 집을 찾아 가야만 하였는데 이때마다 집이 커지고 아내의 배포도 커져가는 듯 했다 고한다.
지방 국립 대학교 교수라고 해봐야 명예만 좋지 경제적 실속은 별로 없는지라 봉급타서 아이들 학비보태고 가정 꾸려 나가면 빠듯하다는 것을 다 아는 터다. 아내가 시내 변두리로 이사 다녀서 남긴 차익은 경제학 박사인 그도 상상을 초월한 재테크 라 할 수 있었다.
집! 그것은 살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치기도 하며 그 꿈을 이루기도 하고 못내 이루지 못하고 남의 집 셋방에서 일생을 끝내기도 한다.
집! 그것은 살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치기도 하며 그 꿈을 이루기도 하고 못내 이루지 못하고 남의 집 셋방에서 일생을 끝내기도 한다.
산업사회로 치달리며 직업은 분업화 되니 대가족을 유지하고 있던 가정은 자동으로 핵가족화 되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집이란 쉬고 잠자는 곳으로 활용되어지고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는 친구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집에 사는지 모르는 친구가 더 많단다. 또한 친척집 역시 누가 어디에 사는지 잘 모른다. 어린 시절이나 학창시절 철모르고 몰려다니던 친구네 집이야 안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무리 다정한 사이라 하더라도 집에 초청을 하지 않아 가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딱 한번 집들이 할 때가 있을 수 있는데 집들이마저 없다면 친구네 집을 방문하기란 요원한 것이란다.
새집을 짓고, 또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면 집들이를 하고 결혼식을 하고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고 회갑잔치를 벌리고 생일을 해먹는 어떤 대소사라도 자기네 집에서 치렀다. 온 동네 사람들과 일가친척을 초대하고 왕래하던 지난날의 우리네 집이다. 그 집이 이제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지고 철 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아니면 아파트 문 하나로 자신들만 드나든다.
집 안에는 밖의 공기하나 소음한줌 들어오지 못하게 단절시켜놓고 가증스러운 유리를 통하여 밖의 동정만을 살핀다. 그나마 한개 있는 문을 닫아 잠그니 마을이 멀어져가고 이웃이 없어져 간다.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어지며 자신만이 존재하는 성냥갑 속에 성냥개비처럼 화(火)를 묻으며 살아가는 집이 되어간다.
이제는 어느 가정이나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많지도 않은 가족이 또는 혼자서 잠시 쉬고 잠이나 자면 될 집에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 걸까? 예전같이 남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지도 않을 것인데 말이다.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집이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줄 수 있다는 논리에 집은 제구실을 못하고 지금 영업전선에서 신음 중이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행복한 꿈을 꾸며 단란하게 살 것인가?
지나간 시절 초가삼간 오막살이가 진정 살가운 집 구실을 했을 것 같다.
<저자 약력>
▲ 소설가 석 도 익 (石道益)
▲ 향토재건중학교 설립 운영
▲ 재건국민운동 종합지도자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홍천지부 회장(역임)
▲ 한맥문학가협회 자문위원(현)
▲ 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 회장(현)
▲ 홍천문화원 향토사료연구위원(현)
저서
▲소설 : 어머니의 초상화 / 미친놈/온라인/ 안개/목탁소리 등 단편 다수
▲수필집 : 사리암 / 잃어가는 우리의 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