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넓은 내(洪川)홍천을 예향으로

돌 박사 2024. 12. 28. 15:44


< 칼럼 >                      
넓은 내(洪川)를 예향(藝鄕)으로

         소설가  석 도 익

산과 강이 어우러져 분지를 이룬 곳 홍천(洪넓을홍 川내천)이다. 넓은 내가 흐른다하여 지명이 홍천이고 강 이름도 홍천 강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사용한 홍천 강은 백두대간 미약골에서 발원하여 홍천군내 모든 지천을 모두모아 400여리 물길에 수 태극을 그리면서 흘러 북한강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부터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으니 발길마다 문화유산유물이 지천이고, 홍천정명 천년의 역사에 문화예술을 꽃피워 왔으니, 이를 그림 그려놓은 듯이 표현한 시가 있다.

홍천의 강물은 /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고 / 깊지도 않고 얇지도 않으며

        산은 / 위압적으로 높지도 않고 비굴할 정도로 낮지도 않았다.

        들은 / 막막할 정도로 넓지 않고 궁색할 정도로 좁지 않으며

              개 짖는 소리는 멀리 들리고 닭이 우는 소리는 한가했다

이 글은 조선말 격동기 선비의 상징적 인물인 철학자요 교육자 이신 화서 이항로 선생님의 글로서 화서집(華西集)에 기록된 것이다. 선생은 높은 관직이나 영화를 사양하고 백년대계를 위한 후학을 길러 나라에 근간을 세운 분으로 금강산을 다녀오는 길에 홍천을 지나치다 산과 강에 매료되어 자신의 나이마저 잊고 이상형 마을을 만들기 위한 꿈을 펼치던 곳이 홍천군 화촌면 홍천 강 마지막 포구였던 삼포마을이다.             홍천에 산은 높지도 험하지도 않으니 사람 또한 모나지 아니하고 온화하며, 강은 위협적으로 깊지도 갑갑하게 좁지도 아니하니 들에 터 잡아 사는 사람 또한 마음 넓고 정이 많아 홍천에는 다툼이 없으니 송사가 없고 평온하여 관리가 정사보기 수월하기에 누워서도 일을 볼 수있다하여 와치현(臥治懸) 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홍천읍내에는 학명루(鶴鳴樓)가 있어서 현관리가 지역 어른들의 의견을 듣고 현정에 참고하였다 하고, 현(縣) 동쪽 범파정(泛波亭)에는 전국에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져 시류를 논하고 학문을 교류하였으니 일찍이 홍천은 문재와 예술인이 많이 배출되고 문화예술이 생성되어온 터전이었다. 또한 불교문화로 삶이 융성하고, 동학으로 의를 세우고, 유학으로 충효를 지키며, 기독교의 사랑으로 민주를 지향하고, 위민지도자가 많았는가 하면, 주민은 화합 단결하였던 홍천은 구국을 위해 종교인들이 하나가되어 앞장선 3.1독립운동을 펼쳤다.  이같이 자랑스러운 고장에, 훗날 우리들의 보람된 자취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에서도 먹고 사는데 여유가 있어야 예술문화생활을 할 수 있듯이. 국가나 지방자치에서도 우선 먹고 사는데 우선하고 다음이 복지고 문화예술이 뒤따른다. 작금에 우리나라의 모든 화두나 정책이슈는 복지에 치중되어 있다. 복지에 밀리어 예술관련 예산은 밀리고 줄어들어 자칫 형식화 되어가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가난할수록 노래를 많이 부르게 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의 등불은 예술문화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예술문화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살찌우고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유일한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은 모든 문화예술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성장하여 삶의 터가되어 삶속에 녹아들며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창출하여 왔기에 예술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그 흔적을 보존하고 알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홍천은 강원도 18개 시 군중에서도 무엇으로라도 뒤처지지 않던 고장이었는데 지방자치가 되면서 문화예술에 근간을 두고 삶의 질을 향상하고 자기고장의 정체성과 품격과 위상을 정립하여 발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는 지방화현실에 예술부분에서는 많이 뒤쳐져있다고 생각된다.         전국의 군단위에서는 선두주자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홍천지부가 설립되어 꾸준히 지방예술문화수요충족에 기여하였으며, 현재 6개지부로 각 분야에서 많은 예술인이 지방과 중앙에서 눈부신 창작과 예술 활동을 하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예술문화 창작의 터전이 미약함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미술관이 어렵게 설립되어 미술 분야에서는 발표와 전시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고, 또한 발 빠르게 홍천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예술인들의 창작과 공연활동에 버팀목과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어 지방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유난하게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아쉽게 보내며 새해에 바라는 것들이 많다.  지방화 시대 뒤쳐져서는 안 된다. 모두가 뛰고 있는데 걸어가서는 늦어진다. 오래전 전부터 미루어온 홍천문학관 설립을 다각적으로 논의하고 폐교를 활용하더라도 하루속히 설립하였으면 한다. 예술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홍천의 정체성을 담은 문학의 모든 것을 모아 내보일 홍천문학관을 만드는데 홍천출신문인들부터 뜻과 힘은 모아야 할 것이다. 넓은 내 고장의 역사관이 되고 미래관이며 지방발전소가 되어줄 홍천문학관은 장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이며 현실에 현명한 결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한편 홍천군에서 검토하고 기획하던 범파정도 복원하여 역사에 풍류와 예향을 이어갔으면 한다. 이는 서거정 고학자(高學者)가 말했듯이 지역융성을 위하여 이루려는 것이지 호화스러운 낭비가 아니다. 이제 홍천의 예술문화 그리고 선조들의 얼을 이어서 넓은 내 홍천에 1000년 역사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http://hci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2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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