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빌려온 좋은글

옛날 다방에 추억

돌 박사 2023. 3. 3. 16:31


나이 육칠십 대
사람치고

옛날 다방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한 자리 없는 사람
있을까?

*
당시의 다방에는
낭만도 있었고,

남자의 자존심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눈물 쏟아내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었다.

*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단체관람장
이기도 했으니,

그 당시 다방은
‘한국적 명물’로

어른들의 사랑방,
대학생의 만남방,

직장인의 휴식 공간,
동네 한량들의 아지트였으며

데이트와
맞선 공간,

가짜 시계 등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

음악감상 공간 등
'거리의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젊은 청춘을 위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다방은

카운터에
중년 여성인 ‘마담’이 앉아 있고

‘레지’(영어로 lady)라고 불리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라주는 동안에

구슬픈 뽕짝 가락이
손님들의 가슴을

적이 적셔주는
그런 형태였다.

*
그 당시 사람치고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중앙통에 있는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연 하나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려고

주막에서
세련된 다방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
다방에 들어서면

낯익은 마담과 레지가 경쟁하듯
환하게 맞아줬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면서

속 보이는 아양을
떨었다.

*
손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 오빠보다

더 정겹게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리는 그 분위기를

우쭐하며
즐겼으니.

*
"커피 한잔 가져와" 하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저도 한잔하면 안 될까요?“
가 곧바로 이어졌고,

그 상황에서
"NO!"는 존재하지 않았다.

*
70년대 후반 들어
야쿠르트로
바뀌기도 했지만,

요즘이야
맹숭 커피 한잔에도

돼지국밥 한 그릇 값을
지불하지만,

그 당시
커피 한잔은

실없는 농담에

가벼운 신체접촉
권한(?)까지 주었으니

참으로 옹골진
값어치였던 셈이다.

*
분위기가
넘어왔다 싶으면

마담이나 레지의
"우리 쌍화차 한잔 더하면
안될까요?"라는

비싼 차 주문이
발사되고

여기에도
"NO!"는 거의 없었다.

*
그 시절 그렇게
분위기가 익어가는 것이

뭇 사내들의 멋이었고
낭만이기도 했지만,

마담이나 레지에게는
매출을 올려

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사고과였으니,

그런
손님과 레지의
의기투합(?)은

나중에
티켓다방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인기 레지는

거의 연예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
어느 다방에
멋진 레지가 새로 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다방에는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는데,

레지가 인기를 누렸던
현상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특이한 풍경이기도 했다.

*
6~70년대의
다방에서는

커피라고는
한 종류만 있었기에

손님들은
그냥

‘커피’를
주문하면 되었다.

*
다방이 아닌
요즘의

커피전문점 ‘카페’에서
커피 메뉴판을 보면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하나같이 그 이름이
복잡하고 어렵다.

*
다방에서 Cafe로

세월 따라
이름도 변해감에,

한때
옛날 다방을 주름잡던
청춘에겐

나이만큼
서글픔이 몰려온다.

*
한잔의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으므로

꽃향기가 풍성한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들 한다.

*
그러나
요즘의 다양해진
커피 맛과 향이

옛날 다방의
낭만적인 커피 맛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
모닝커피라며

족보에도 없는
달걀노른자까지 곁들였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마담과 레지의 환송을 받으며
다방 문 나설 때의

우쭐해지던
커피 맛 외의 또 다른 그 맛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
영화도
흘러간 영화가

정겹고
가슴에 와닿듯이

커피도
옛날 다방의 커피 맛이

한결 감미롭게
느껴진다.

*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요즘 아이돌 노래들을,

요즘 젊은이들이
내 나이 되었을 때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방탄소년단 노래가
참 좋았는데”

라고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
허긴
우리 부모님도
남인수 고복수 노래만이 노래였고

김추자, 송창식 노래는
소음일 뿐이었겠지만.

양장을 걸치고
카운터에서 무게 잡던
김 마담과

미니스커트 입고
아양 떨던

미스 박이라는
레지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
그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흐른다.

*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https://youtu.be/CKrybgx_l3E


오늘도
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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