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육칠십 대
사람치고
옛날 다방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한 자리 없는 사람
있을까?
*
당시의 다방에는
낭만도 있었고,
남자의 자존심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눈물 쏟아내는
이별의 장이기도 했었다.
*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단체관람장
이기도 했으니,
그 당시 다방은
‘한국적 명물’로
어른들의 사랑방,
대학생의 만남방,
직장인의 휴식 공간,
동네 한량들의 아지트였으며
데이트와
맞선 공간,
가짜 시계 등이 거래되는
상거래 공간,
음악감상 공간 등
'거리의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젊은 청춘을 위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다방은
카운터에
중년 여성인 ‘마담’이 앉아 있고
‘레지’(영어로 lady)라고 불리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커피를
날라주는 동안에
구슬픈 뽕짝 가락이
손님들의 가슴을
적이 적셔주는
그런 형태였다.
*
그 당시 사람치고
시골 읍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중앙통에 있는 다방의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연 하나 없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려고
주막에서
세련된 다방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
다방에 들어서면
낯익은 마담과 레지가 경쟁하듯
환하게 맞아줬고,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어김없이 옆자리에
살포시 앉으면서
속 보이는 아양을
떨었다.
*
손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정 오빠보다
더 정겹게 팔짱을 끼며
애교까지 부리는 그 분위기를
우쭐하며
즐겼으니.
*
"커피 한잔 가져와" 하는
손님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저도 한잔하면 안 될까요?“
가 곧바로 이어졌고,
그 상황에서
"NO!"는 존재하지 않았다.
*
70년대 후반 들어
야쿠르트로
바뀌기도 했지만,
요즘이야
맹숭 커피 한잔에도
돼지국밥 한 그릇 값을
지불하지만,
그 당시
커피 한잔은
실없는 농담에
가벼운 신체접촉
권한(?)까지 주었으니
참으로 옹골진
값어치였던 셈이다.
*
분위기가
넘어왔다 싶으면
마담이나 레지의
"우리 쌍화차 한잔 더하면
안될까요?"라는
비싼 차 주문이
발사되고
여기에도
"NO!"는 거의 없었다.
*
그 시절 그렇게
분위기가 익어가는 것이
뭇 사내들의 멋이었고
낭만이기도 했지만,
마담이나 레지에게는
매출을 올려
주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인사고과였으니,
그런
손님과 레지의
의기투합(?)은
나중에
티켓다방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인기 레지는
거의 연예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
어느 다방에
멋진 레지가 새로 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다방에는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는데,
레지가 인기를 누렸던
현상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특이한 풍경이기도 했다.
*
6~70년대의
다방에서는
커피라고는
한 종류만 있었기에
손님들은
그냥
‘커피’를
주문하면 되었다.
*
다방이 아닌
요즘의
커피전문점 ‘카페’에서
커피 메뉴판을 보면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하나같이 그 이름이
복잡하고 어렵다.
*
다방에서 Cafe로
세월 따라
이름도 변해감에,
한때
옛날 다방을 주름잡던
청춘에겐
나이만큼
서글픔이 몰려온다.
*
한잔의 커피에는
반드시
꽃향기가 있으므로
꽃향기가 풍성한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들 한다.
*
그러나
요즘의 다양해진
커피 맛과 향이
옛날 다방의
낭만적인 커피 맛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
모닝커피라며
족보에도 없는
달걀노른자까지 곁들였으니,
커피를 한잔하고
마담과 레지의 환송을 받으며
다방 문 나설 때의
우쭐해지던
커피 맛 외의 또 다른 그 맛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
영화도
흘러간 영화가
정겹고
가슴에 와닿듯이
커피도
옛날 다방의 커피 맛이
한결 감미롭게
느껴진다.
*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요즘 아이돌 노래들을,
요즘 젊은이들이
내 나이 되었을 때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방탄소년단 노래가
참 좋았는데”
라고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
허긴
우리 부모님도
남인수 고복수 노래만이 노래였고
김추자, 송창식 노래는
소음일 뿐이었겠지만.
양장을 걸치고
카운터에서 무게 잡던
김 마담과
미니스커트 입고
아양 떨던
미스 박이라는
레지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
그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흐른다.
*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https://youtu.be/CKrybgx_l3E
오늘도
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