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넓은 내(洪川)이야기

솟을 묘 와 고인돌 군

돌 박사 2019. 2. 11. 11:46

   

홍천의 솟을 묘와 고인돌 군                                       

                                                                                                    소설가   석 도 익


    홍천읍 전경


  


  홍천 솟을 묘와 고인돌 군

 

  넓은 내가 흐르는 홍천, 그 홍천강물이 굽이쳐 흘러내려오며 만들어지는 분지, 하화계리 강변에는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해서 우리나라의 인류문화유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굴지 하이트 맥주공장이 있으며 강 건너에는 불소함량이 국내에서도 최고 높다고 알려진 온천이 샘솟는 홍천온천이 있으며 바로 위편 동산이 있다.

  행정구역상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664-1번지쯤의 위치로 5번국도(원주 - 춘천) 로 북방면 소재지를 지나 화계초교아래 소매곡 방향의 지방도로 진입하여 온천길로 올라가다보면 양옆에 군부대가 있다.

오른쪽 군부대 옆을 지나 좌측부대가 있다. 이 부대 영내에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솟을 묘가 영내끝자락 담장 안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솟을 묘는 춘천시 우두동 우두 산에도 있다. 소의 머리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우두산인 이곳에 그 연대를 알 수 없는 묘가 하나 있다. 이 묘가 바로 솟을 묘라고 하는데 이 묘에 소가 발자국을 내놓으면 다음날 눌려있던 소의 발자국에 흙이 솟아올라와 감쪽같이 자국이 없어진다는 것에서 유래되는 솟을 묘다.

  바로 그런 묘가 이곳에도 있다. 그리고 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인돌 군도 3개나 주위에 버티고 있는 것이 더 특징이다.

이 마을은 백이라는 자연부락 이름을 가진 곳으로 촌락이었을 곳이고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분이 하나 있는데 봉분이 일반묘지보다 두 배정도 크다. 묘지란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어 오랜 세월을 지나노라면 봉분이 낮아져 자연 평지같이 퇴적되어 지는데 이곳에 고분은 둥그런 원형의 모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더운 의아한 것은 고인돌로 추측되는 돌이 3개 이상 고분주위에 있고,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부대가 있기 전에는 돌이 더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을 증빙하듯이 낮은 지대에 굴러가 있는 거대한 돌도 있어서 부대 내에서 이 돌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을 개연성도 있음직하다.

  6.25이후에 이곳에 군부대가 들어서고 부터는 마을과 격리되어 지금까지 영내에 있는 고분은 부대에서 잘 관리해 온 것 같다. 주위에 커다란 향나무가 있고 묘지에 잔디가 고루 자라 있는 것으로 보아서 벌초도 해마다 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러한 고분을 그냥 방치하였더라면 고분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기 십상인데 지금까지 도굴되지 않아 원형을 잃지 않고 보존되어 온 것이 천만 다행이다.



 지석군과 솟을묘 (군부대 영내에 위치해 있음)

  향나무는 병사들이 심었을 듯 함


 묘지의 봉분과 잔디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




 당초의 묘지는 상당히 큰 봉분이었을것으로 추측됨

  묘지 옆의 세워진 돌은  비석이 아닌듯 함

  고분과 고인돌 군 비석돌

 현재로는 고분 앞에 돌군이 2개 있으며 좌측아래에 1개가 더 굴러가 있음

      솟을 묘 의 구전(口傳)

 

* 이곳에 마을사람들이 소를 매놓기도 하는데 하루 종일 밟아친 소의 발자국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묘지에 흙이 솟아올라 소의 발자국이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해서 솟을 묘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명당자리며 이묘지에 묻힌 사람은 아마도 높은 사람일거라고 했다.

* 이 묘지는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묘로서 벌초를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벌초를 해주는 사람은 소원성취 한다 는 말이 전해져 옴으로 마을 사람들은 서로 먼저 벌초를 하기 때문에 늘 잡초가 자라지 않게 잘 관리되어 내려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벌초를 해준 집안에는 좋은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 이 묘지애 얽힌 이야기 중에는 오랜옛날 낮모르는 사람들이 백마를 타고 여러 명이 마을에 와서 묘를 찾으러 했으나 이 묘지를 알려주면 마을이 망한다고 전해지는 말을 믿고 주민들이 모두 모른다고 함구하였다.

* 또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나라의 왕이 탄생하는 명당자리라고 전해내려 왔다고 하는데 아마도 정통을 이어받지 못한 군주와 조정에서는 심히 근심걱정 되는 지역으로 인식되어졌을 것이다.

* 이상한 것은 또 있다. 묘지의 부근을 발로 크게 울리면 여느 곳과는 소리가 다르게 울린다. 또한 이곳 묘지 주변에 고인돌 형태의 석 군들은 어디서 운반해 왔으며 고인돌 군 사이에 묘지가 있음은 확실히 다른 연대일 것이다. 만약에 이 석 군들이 고인돌이라면 그 연대는 더 오랜 세월의 것이며 이 묘지는 그 후 어느 시대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 위의 솟을 묘와 고인돌군을 이지역에서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궁경 옹은 그냥 방치하는것 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인류최초문화 고분묘 보호비(人類最初文化 古墳 墓 保護 碑) 를 세워 관리하며 향토역사자료로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고자 사비를 들여서 보존비를 2019.3.19에세웠다.

 참고로 남궁경 옹은 홍천지역에 묻혀있는 의로운 역사유적을 발굴하고 민족정신문화를 보존하는 자료가 되게하는 일을 앞장서서 해왔다. 그중에는 북방면 3.1독립운동 5의사 추모비 건립. 화촌면 야시대리 반공청년위령비 건립주도. 북방면 성동리 만세운동을 부르던 동동산에 세운 독립만세기념비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