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열이 새긴 소원 "대한민국만세!"
소설가 석 도 익
기미년 4월 3일 2개 군 5개면 3천여 주민이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 집결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조선이 자주독립국가 임을 선포하고 일제에 항거하여
애국애족정신을 일깨웠던 충렬의 고장에 그 시대에 민족정신을 새긴 흔적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지금에 드러났다.
내촌면을 따라 흐르는 용호강 물 바위에 어렵게 새겨 넣은 “대한민국만세”라는 선명한 글자가 1세기의 물때를 머금은 채 홀로 강을 지키고 있었다.
(너래 바위 앞 측면에 음각으로 새겼음)
이 바위가 있는 곳은 동창들이 바라보이는 외진 물굽이를 지나 유속이 완만하여 지난날 마을 어린이들이 멱 감고 놀았다는 곳이고 마을 어른들이 짬나는
날에 모여서 물고기 잡아 천엽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물이 1킬로미터만 흘러가면 동창 뜰 조금 아래부터 김군보 수로다.)
위로 굽이하나 돌면 그곳은 용호터 라고 하는 곳으로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이다. 이곳, 외딴집에는 연규환 분의 집으로 도깨비가 있다는 집이라 하여
마을사람들 조차 가기를 꺼려하던 곳으로 지금도 도깨비 터라고 한다.
(대한민국 이라고 음각한 바위와 바라보이는 굽이진 뒤가 도깨비 터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위조화폐를 만들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하며 이곳에서 동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 장두(장두 : 동학교의 직책)가 일본경찰의
수배자가 되어서 숨어 다닐 때 연규환 의인이 외딴 자기 집 고물다락에 숨겨주고 3년간 뒷바라지를 하였으며, 이때 고물다락에서 인기척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는 도깨비가 있어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음으로 이후 도깨비 집이 되었으며, 이후 김덕원 의사가 체포당하고 연규환 의인은
행방불명되었는데 압록 강변 후창지역에서 사망하고 그곳에 묻혔다고 훗날 전해졌다고 한다.
(도깨비 터 와 도깨비 집(복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나온 전후사정으로 볼 때 일제 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였으나 만세운동마저 못하는 수배자로 상해 임시정부가 생기니
숨어살면서라도 자주국임을 주민에게 알려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하여 일본경찰의 승냥이 같은 눈을 피해 강에 놓인 바위에 “대한민국만세”라는 글을 새기며
구국의 마음을 다졌을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게 정으로 글자하나하나 파냈을 선열의 구국의 혼을 보는 듯하다.
긴 세월 뭇사람들도 발견 못하게 지금까지 지켜온 정절. 우리의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우국충정의 홍천고장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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