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15년 전부터 중고등 학교를 찾아가서 특강을 해오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즐거웠던 마음이 씁쓸해진다.
최근에는 담당선생님이 안내하여 교실에 들어서면 시작종이 이미 울려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학생들이 들락날락 하는가 하면 몇 명은 아예 첫 교시부터 머리를 책상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학생들을 정돈시키려 하나 이에 따르는 학생들은 과반수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말고사도 끝나서 그렇다고 애써 변명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안타깝다.
외부강사로 특강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신선한 시간이고 교과서같이 딱딱하지 않게 인성을 다루기 때문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한기간도 수업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선생님들 얼굴에는 보람을 거두는 흐뭇함이 아니라 일에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있다.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제자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치려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누가 이렇게 배움의 전당을 황폐하게 만들었는가?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존경이라는 아름다운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고. 엎드려 있고 장난치고 음악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소리 높여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 제자들에게 선생님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은 식어갈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현실은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눈을 맑게 빛내고 귀를 기울려 선생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듣고 배우려고 애쓰는 학생들이 몇 명은 있다는 게 희망이기는 하나 이들이 입는 피해가 너무나 크다.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 가르쳤으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그건 단연 인권차별이라고 난리가 날것이다.
이러한 실태에서 돌파구가 사교육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학교에서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공교육의 교육환경에서 소기의 성과를 바랄 수 없으니 학원이다 과외로 보충하는 것이 이제는 학교보다 더 많은 사교육으로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청 인다.
학교 민주화 학생인권이란 명제 하에 학생자치회와 선생님 간에 협약에 어떠한 경우라도 인권에 반하는 것은 할 수 없게 하였으니 학생이 아무리 말을 안 듣고 개인행동을 한다고 하더라고 나무라거나 체벌을 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제발 공부하자고 사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선생님은 보람을 포기하고 급여를 타는 근로자로서 자신에 부여된 일과를 벽에 대고라고 시간을 때워야하는 현실이다.
이 모든 현실은 학부모들의 가정교육 부재도 크거니와, 자녀에게 쏟는 지나친 과잉보호가 학교생활까지 간섭함으로서 생긴 결과이며 참교육을 가지고 두 갈래로 나누어진 교권분열에서도 한 몫을 하였다고 본다.
학부모들을 초청하여 자녀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학부모들이 직접 보게 한다면 선생님들에게 교권을 확립하여 주지 못한 현실을 깨우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학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가르치려고 드는 세상이다. 그러니 학생들도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존재하지도 않으니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사랑도 사라져간다.
성년이 가까운 여학생들이 교실 복도를 지나가며 주전부리를 하고 껍질이나 빈병 우유팩을 그대로 떨구며 지나간다. 그 뒤를 학생들의 할머니뻘 되는 청소아주머니가 쓰레받기에 쓸어 담으며 쫒아가는 한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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