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내[洪川] 이야기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6b7a.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0pixel, 세로 143pixel
(홍천강 전경)
서울에서 한강을 옆으로 바라보며 거슬러 올라오다 보면 서울 시민의 생명수인 풍만한 팔당댐을 보게 되며, 다시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 지점인 두물머리를 지나노라면 거대하게 뭉쳐 있는 남한강 물가에 청둥오리들이 유유자적하는 모습도 운이 좋은 날이면 볼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에서 횡성을 지나 강릉으로 가는 6번 국도는 영동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오지가 되어 버리고 44번 도로가 속초를 이어 주는 직통 도로로 이용되고 있는데, 청운면 삼성리 신당고개 정상에서부터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이자 홍천의 관문이다.
홍천군은 전국에서 제일 넓은(1,817.94km2) 지역이며, 홍천읍 시가지를 관통하는 북한강 지류인 화양강이 태백산맥의 분수령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북한강과 합류하고 있으며, 이 강 유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조상들이 터 잡은 작은 분지로 이루어진 넓은 내[洪川] 홍천이다.
동북쪽으로는 인제군과 양양군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횡성군과 평창군 서쪽으로 경기도 양평군과 북쪽으로 춘천시와 접하고 있다.
다시 봉긋한 며느리고개 산길을 빠져나오면 길 양옆으로 중앙고속도로 홍천 나들목이 있고 시야에는 넓은 강이 바라다 보인다.
이 강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그대로 붙여 부르기도 하는 홍천 강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91pixel, 세로 394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9년 08월 09일 오후 5:47
(홍천강 발원지 미약골)
화양강이라고도 하는 홍천강은 홍천군 서석면 생곡 미약골에서 발원하여 10개 읍면의 지류를 다 합쳐서 청평의 북한강으로 흐르는데,우리나라의 강들은 대부분 발원지에서 여러 장의 지천을 합하여 흐르기 때문에 지명을 따서 강 이름을 부르는 예가 없으나, 이 화양강은 홍천군의 전 지역의 지천만 모였을 뿐 다른 지역의 물이 유입되지 않은 순수한 홍천군의 물이 홍천 땅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지명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부른다 해도 강 이름에 크게 손상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 다툼 또한 없을 것이다.
물안개 피는 홍천강 언덕엔 까마득히 오랜 옛날, 선사 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유적지가 있어, 선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강변을 바라보며 홍천읍에 들어서면 강 하구에 바라다 보이는 산업도로 옆에는 농공단지가 있고, 굽이도는 강변 삼각지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하이트 맥주 공장이 있어 홍천의 맑은 암반수로 만들어 내는 맥주가 전국 애주가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강 벼랑 위 우거진 송림에는 고고한 자태의 학이 무리 지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송학정이며, 시내로 진입하기 전 로터리에는 관문 수문장격인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은 무궁화의 고장을 알리는 무궁화 공원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0pixel, 세로 23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05년 05월 10일 오후 6:32
(무궁화 공원)
이곳이 무궁화나무를 심어 무궁화꽃을 그려 놓은 공원으로 무궁화 보급 운동의 창시자인 구한말 애국지사 한서 남궁억 선생 비를 비롯하여 군민 헌장 기념비, 충혼탑, 3・1 만세탑, 6・25 당시 전적을 기린 홍천 지구 전투 전적비, 국회 부의장을 지낸 동은 이재학 선생 기념비와 광장에 건립한 반공 희생자 위령탑과 역사적 고증인 각종 비석들이 있고 향토 사료관이 있어, 여가 선용은 물론 향토애와 나라 사랑의 산 교육 도장으로서 잠시 들러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홍천지부와 한국문인협회 홍천지부 회장을 역임한 석도익 소설가가 임기 중 추진하여 건립한 두 번째 시비로, 2015년 어린이날 무궁화 공원에 세운 아동문학가 고 민현숙 님의 동시비다. 그는 홍천의 자랑이며 한국 아동 문단의 보배로서,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 4편이나 실려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고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5140004.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295pixel
(민현숙 「고르게 펴면」 동시비)
우리 고장 문인이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를 보는 사람 모두가 여유로운 삶이었으면 하는 뜻을 가지고 글벗 분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세웠다.
시내 북편으로 봉긋이 솟아 있는 두개비산은 망루가 있는 산성 터이며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한다. 맥을 같이하여 석화산이 버티어 있고, 그 자락에 홍천군청이 자리 잡고 옆에는 향교가 동방의 효와 충의 예절을 지키며 후학에 전하고 있다.
홍천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홍천강의 물비늘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황홀함을 바라보며 거슬러 올라가면 시내 중심가에서 동으로 444번 분기점에서 동쪽으로 가면 이괄 장군 바위가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동학군이 포진하여 관군과 싸우던 성전 터인 성수리 마을이 있고, 수변 공원에는 작고한 향토 시인 이종호의 시비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시비 저 너머로 공작산이 보인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3.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0pixel, 세로 623pixel
(이종호 「다 털고 가는 구나」 시비)
공작산은 해발 887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우며, 기암절벽과 분재 모양의 노송 군락, 눈 덮인 겨울산도 일품이다.
한국 100대 명산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수타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7년(서기 708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대적광전 팔작 청기와 지붕과 1364년 만든 동종,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고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한 대적광전, 범종, 후불 탱화, 홍우당 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 내륙 최고 고찰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4.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49pixel, 세로 167pixel
(홍천 9경 중 수타사)
수타사에서 동면 노천리까지 약 12km에 이르는 수타사 계곡에는 넓은 암반과 큼직큼직한 소沼들이 비경을 이루고 있고 계곡 양쪽으로는 기암절벽과 빽빽이 우거진 숲이 호위하고 있어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비경 삼매에 빠져들기 일쑤다.
동면 노천에서 좌운을 지나 횡성으로 나가는 길과 서석으로 넘어가는 양 갈래길이 있다.
다시 원래의 44번 국도 홍천읍으로 이야기를 옮기면 그 옛날에는 나룻배가 서울 마포나루를 거슬러 올라와 포구를 형성했다는 구성포에서 춘천의 뒷편으로 이어 주는 가락재 넘어가는 풍천리 길이 열려 있고, 동으로는 내삼포 외삼포를 거쳐 서석면과 내면을 지나 운두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길이다.
화촌면과 두촌면의 경계인 말고개를 넘노라면 북한군이 6・25 남침을 준비하기 위해 정탐 병력을 자주 남침시켜 민간 청년들을 무참히 살상하기도 했으며, 실제 적들이 쳐들어올 때나 후퇴할 때에 주 작전 도로가 되었던 이곳은, 육탄으로 적의 탱크를 맞아 싸운 육탄 용사 전적비가 있으며, 지금도 피아의 시신 발굴을 하고 있을 정도로 피의 능선인 곳이기도 하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39pixel, 세로 662pixel
(홍천 9경 중 가리산 큰바위 얼굴)
홍천강의 끝자락을 수십 길 벼랑 밑으로 내려다보며 말고개를 넘으면 철정에 다다른다. 여기서 내촌으로 가는 분기점이 있고 역내리로 거슬러 가는 길 좌측으로 가리산이 있는데 해발 1,051m의 가리산은 산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와 발 아래로 펼쳐진 소양호의 풍경이 등산객들의 발을 묶는 곳이다. 또한 이 산의 1봉 남쪽 정상 아래 바위 벽면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400리 홍천강으로 흐르는 작은 석간수는 목마름에 지친 등산객들에게 청량감을 더해 주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산자락 밑에 위치한 조그마한 폭포의 물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며, 이곳에서부터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이 시작된다. 또한 가리산 정상에서 마주보이는 곳이 옛 이름은 천치리였으나 지명을 바꾸어달라는 주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천현리로 개명한 샘재 마을에서 로또복권 사상 1등 최고액과 2등이 몇 주 사이에 당첨된 바 있어 명당터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일대를 홍천군에서 자연 휴양림 지역으로 조성, 1995년 7월 개장한 가리산 자연 휴양림이 있어 통나무집, 야영장, 체육 시설을 이용하는 가족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길 우측으로는 1억 톤의 철이 매장되어 있는 철광이 있으나 지금은 개발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철 산업에 한몫을 차지할 수 있는 국내 제일의 철광산이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6.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49pixel, 세로 166pixel
(홍천 9경 중 용소계곡)
또한 용소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km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와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봄에는 철쭉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갈대와 어우러지고, 여름철에는 시원함을 주는 이 계곡에는 옛날 절터와 삼층 석탑이 있으며, 이 삼층 석탑을 옮기려 할 때 호랑이가 나타는 바람에 옮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용소계곡은 가족 단위의 등산이나 산림욕 코스로 적당하며 당일 산행으로 알맞은 곳이다.
(홍천 9경 중 가령폭포) (척야산 수목원 민족 정기 광장)
홍천과 인제군의 경계 지점인 두촌면 장남리 산기슭 도로변에는 6・25 사변 당시 참전한 프랑스 의무 장교 장루이 소령 동상이 서 있다.
1951년 5월 8일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전투에서 한국군 부상병을 구출하고 34세의 꽃다운 나이로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그를 위해, 그는 갔으나 그가 남긴 자유 수호의 의지와 전쟁의 와중에서 주민들까지 치료해 준 인도주의적 정신을 이 땅과 전 세계에 길이 기억되게 하기 위하여 동상을 세웠다. 동상에서 조금 더 올라가 고갯마루에서 44번 국도는 인제군으로 보내진다.
다시 내려와서 두촌면 철정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로 들어서면 철정 국군 병원이 있고 산세 좋은 고개를 넘고 맑은 냇물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면 충렬의 땅 내촌면에 다다른다.
내촌면으로 하여 인제 상남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아홉사리 고개 밑에는 가령폭포가 보기 드문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예부터 시인 묵객의 글을 감탄사로 만들어 놓았다.
아홉사리라는 국수 사리 같은 아홉 개의 고개를 넘어가면 인제 경계이며 과거에는 이곳까지도 홍천 땅이었으나 수복 후 인제 지역의 빈약성에 의해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인제군에 편입된 상남면이 나온다.
도관리를 지나는 길의 우측 방향 깊숙이 들어선 동창 마을은 일찍이 동서를 있는 물류 통로로서 창고가 있고 마방이 있던 곳으로 인적 교류가 많아서 문화 예술에 바탕을 둔 유적이 많은가 하면, 선각자적 역할을 했으므로 동학의 마지막 결전지가 되었고, 민족 자존의 삼일 독립 운동의 확산지가 되기도 한 충렬의 고장이다.
독립지사들이 은거하며 나라 일을 걱정하였던 그곳에 삼일 운동의 불꽃이 당겨지고 일본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팔 열사를 기리기 위한 팔 열사 위령비가 있으며 문화제급의 각종 불교 예술품이 존치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많다. 또한 동창 기미 독립 만세 운동에 앞장섰던 동학의 장두 김덕원 의사 후손이기도 한 김창묵 옹은 청소년기에 일본의 조선민 이주 정책에 의해 만주에 농업 개척단 일원으로 생활하다 해방을 맞아 고국에 돌아와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 남대문시장에서 사업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고향인 이곳 홍천에 ʻ동창기미만세운동기념사업회ʼ를 설립하고 홍천 기미 독립 운동의 위대한 민족혼을 찾아, 민족 정기 발현을 위한 성역화 사업을 40여 년간에 걸쳐서 일생 동안 모은 전 재산을 투자해 손수 이루어낸 ʻ척야산문화수목원ʼ과 그 외 민족 문화 역사 조형물, 홍천 가요 제작 등에 심혈을 기울여 옴으로써 이 전체를 홍천 문화 역사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지금은 전국 각처에서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8.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60pixel, 세로 285pixel
(내촌면 물걸리 동창 기미 만세 기념 동상)
전라도에서 일어난 동학의 민중 봉기는 관군에게 밀려 쫓기면서 천도교도의 활동이 활발했던 홍천으로 오게 되었을 것이다.
횡성을 지나 홍천 동면을 거쳐 내촌으로, 다시 서석으로 후퇴하다 자작고개에서 많은 전사자를 내고 패하였으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민중 봉기는 몇백 명의 시신을 묻은 무덤만을 서석면 풍암리 마을 뒷산 자작고개(당시 시신에서 흐른 피가 자작자작 흘렀다 하여)에 남기고 농민 혁명의 역사를 기록했다.
서석 풍암에서 횡성으로 빠지는 길이 있고, 내면으로 치닫는 산길 옆에는 홍천강의 발원지인 생곡의 미약골은 천혜의 자연 경관과 인간의 원천을 만드는 여인의 은밀한 곳같이 아름다운 곡선의 산속에는 모태의 샘터같이 생긴 곳에서 생명의 젖줄 같은 샘물이 솟아올라 아래로 흐르고, 산 아래에는 내면 뱃재의 분수령에서 흐르는 계곡천과 함께 아래로 내려 홍천군의 각 면마다 흐르는 개천을 합하여 홍천강을 만든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9.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39pixel, 세로 593pixel
(홍천 9경 중 삼봉약수)
서석을 지나 뱃재 고개를 오르면 홍천의 오지 내면이다. 청정 자연 속에 열목어가 서식하고 곰취가 자생하는 첩첩산중 골마다 시린 물이 흐르고 한여름에도 목욕하기 힘든 이곳에는 삼봉약수가 도심에 찌든 마음까지 씻어 주고 칡소와 살둔계곡은 지친 도심인의 발길을 묶는다.
지난날에는 무장 공비가 자주 출몰하여 독가촌을 이주시켰으나 이제는 도심 부자들의 별장 휴식처가 계곡마다 생겨나고 있다.
내면 뱃재 마루에서 인제에서 출발한 도로와 합류하여 뱃재를 넘어와 내면 창촌에서 다시 갈라지는 길은 해발 1,577m 높은 계방산의 우람한 등선으로 올라 강릉으로 가고 또 한 길은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나 홍천에서 재 넘고 영 넘어가는 길은 모두 해 뜨는 동해를 향하여 간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제8경-살둔계곡_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98pixel, 세로 420pixel
(홍천 9경 중 살둔계곡)
이야기는 다시 홍천강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그 옛날에 한강의 마포나루까지 연결되었을 화촌면 삼포에서 가락재 넘어 춘천을 잇는 구성포 삼거리, 다시 홍천읍의 중심부를 뚫고 내려온 강은 북방면을 휘감아 돌아가며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강 유역에 터 잡아 살던 선사 유적지를 남겼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18.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66pixel, 세로 644pixel
(강재구공원 위령탑)
이곳에는 한국 굴지의 맥주 공장과 불소 함량이 국내 최대인 온천이 샘솟아 홍천온천 레저 시설이 들어서고 있으며, 북쪽 방향인 성동리에는 우방을 지키고 국가 재건에 이바지한 월남 파병 부대의 선진인 맹호 부대가 있을 당시 파병 훈련 중 부하 장병이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장병들을 살린 고 강재구 소령의 숭고한 군인 정신이 살아 있는 강재구 공원이 있어 숭고한 군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 있다.
(강원도 자연환경연구공원) (홍천 무궁화수목원)
또한 앞서가는 강원인의 자존을 건 환경 보존 사업으로 자연 환경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환경 오염으로 병들어 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하여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 자연 환경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더불어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견학장소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강원도 자연환경연구공원이 아직 때묻지 않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5번 국도는 춘천으로 넘어가는 능평리에 무궁화의 고장답게 홍천 무궁화수목원에 나라꽃 무궁화가 수려한 자태로 수목을 이루고 있다.
홍천강물은 홍천읍 시내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븍방면의 지천을 합하여 서면으로 방향을 잡고 굽이굽이 돌아가니 강변 바위 벼랑마다 철쭉이 붉게 타고 꽃잎과 오색의 단풍을 태우고 흐르는데, 금학산 정상에 오르면 구불구불 흘러가는 발아래 강을 굽어보라! 네 귀퉁이에 건·곤·감·이를 그려 넣고, 빨강 파랑 색을 칠하면 분명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황홀히도 펼쳐져 있으니. 산태극수태극이다. 이토록 완벽하게 태극 모양을 대자연이 그려 낼 줄을 어이 알았으랴 싶다.
강물이 서면 팔봉에 이르면 설악산이 떠내려온 듯한 작은 설악산 모형의 팔봉산이 봉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한 형제인 듯 솟아 있으니 괴암 비경을 오르는 사람마다 새로운 감회를 만들어 준다.
팔봉산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은 밤벌을 지나 보리울에 다다른다. 유리봉에 피어나는 무궁화는 한말 애국지사인 한서 남궁억 선생이 독립의 한을 풀고자 후학을 키우고 무궁화 운동을 장려한 곳이기에 홍천이 무궁화 고장으로 태동한 곳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c.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50pixel, 세로 405pixel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b40000b.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49pixel, 세로 167pixel
(홍천 9경 중 금학산과 아래 보이는 태극 마을)
(홍천 9경 중 팔봉산)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되게 하고 무궁화 선양으로 나라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가고자 하는 충정이 거세게 물결치며 홍천강과 함께 우리나라 민족의 가슴마다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피어나게 하고 있다.
강물은 다시 마지막 남면에서 흘러온 용소계곡 물을 거두어 홍천군 10개 읍면의 물을 다 합치고 홍천강의 마지막 포구인 어유포를 지나 청평댐에 담수하니, 그 길이가 장장 143km 긴 물줄기는 합수에서 북한강과 몸을 섞고 다시 흘러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방하여 한강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놓고 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한서.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67pixel, 세로 200pixel
(한서 남궁억 기념관)
산맥이 인맥이요 수맥이 명맥이라. 홍천은 조국을 수호한 애국지사에서부터 호국 열사가 난시 난국을 이겨냈다. 사상가 정치가 문재들이 많으니 어찌 다 열거하겠는가마는, 한말의 정치가로 언론인으로 무궁화 보급운동에 앞장섰던 한서 남궁억 선생이 나라 사랑을 실천한 홍천이 무궁화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했고, 격랑의 제1공화국 시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동은 이재학 선생의 업적 또한 크기에 우리나라 민주주의 사상 유래 없는 옥중 당선을 한 사실 또한 홍천의 역사다.
넓은 내[洪川] 이야기 _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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