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智慧)
애꾸눈에 외다리이면서
난쟁이 몸을 가진
자존심 (열등감)이 아주 강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왕이
그 나라 제일의 화가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화가는 왕의 의중을
자기 생각으로 추측하여
다리 둘에, 두 눈에,
보통 키의 정상인의 모습으로
왕을 그렸습니다.
이를 본 왕은
우롱 당한 듯한 모욕감을 느끼고,
그 화가를 처형해 버렸습니다.
다음에 불려 온 화가는
먼저 왔던 화가의 운명을 알았기에
현실의 모습 그대로
왕을 그렸습니다.
애꾸눈에,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난쟁이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왕은 낙심하고,
그 절망이 분노로 변하여
그림을 그린 화가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세 번째로 불려온 화가는
아무리 이래도 저래도 안 되니
도무지
살아 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면서
살아 날 방도를
곰곰이 생각했고,
결국 그 화가는
왕이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있는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다리 하나는
말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총을 겨냥할 때는
성한 사람도 한 쪽 눈을 감기에
이상하지 않았으며,
등을 굽힌 채
말을 타고 있으니
키가 작아 보이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정상인처럼 그려졌습니다.
왕은 이 그림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그 화가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화가는
사실을 기만하는 거짓을 그려
아부하다 목숨을 잃었고,
두 번째 화가는
첫 번째 화가가 거짓을 그려
죽임을 당했으니
자신은 사실을 그렸지만
자존감이 부족한 왕의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헤아리는
혜안의 자비가 없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화가는
두 화가의 죽음을 보고
진실을 드러내되
배려가 함께 하는 혜안을 깨우쳐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너무 직설적이거나
정 반대로 잔꾀로 가득한
극단적이거나
기만적인 태도 보다
배려 심을 동반한 지혜가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고지식한 직설도,
배려심 없는 잔꾀도
모두 다
경계해야 할 일인 듯합니다.
- 옮긴 글 -
출처 : 친구를 찾는 사람 블러그
옛날 초해 왕이
아침을 먹다가
거머리를 발견하자
김치에 싸서 말아 가지고
먹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것을 가지고 나무라면
최소한 요리사로부터
몇 사람이 죽을 테니까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한 순간의 지혜가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진 것이지요.
중국 오패의 초장 왕은
잔치를 베풀어서
신하들과 술을 먹는데
촛불이 꺼지자
어떤 신하가 왕의 애첩에게
입을 맞추자
애첩이 갓 끈을 끊고
"잡아 처벌해 달라"고
왕에게 고하자
지혜로운 왕은 말하길
"여봐라 모두들
갓 끈을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시들이 와서
황급히 불을 켜니까
모두의
갓 끈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한 장수가 나라를 구하고
왕에게 와서
"소인이 예전에
취중에 저지른 실수로
죽을 뻔 했으나
임금님의 자비 덕분에
살았기에 임금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드러내어
벌을 주는 것도 좋지만
덮어 주므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출처] 삶의 지혜(智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