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설익은 과일

돌 박사 2015. 3. 5. 11:47

                                  . 인생칼럼

                                                                                              소설가 :  석도익

 

 

 

       설익은 과일 

 과일은 씨앗을 보호하여 영글게 하고 다 익은 후에는 과육이나 즙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씨앗을 싹트게 한다. 또한 잘 익은 과일은 맛도 있고 몸에도 좋지만, 설익은 과일을 잘못 먹으면 토사곽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조선조 5백 년에 최연소로 대과에 급제한 사람은 강화 사람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다. 고종 때, 강화 섬에서 치러진 별시 문과에서 급제했는데 그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천재요, 신동(神童)이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많은 논란 끝에  너무 어린 나이에 급제했기 때문에 학문을 더 익혀야 한다고 결정하고, 4년 간 공부를 더 하게 하다가 18세 때에야 홍문관 벼슬을 제수하였다고 한다. 사람을 재주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세상물정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깊은 인재 기용이 아닐 수 없다.
 인물을 키우고 단련을 시켜서 나라 일을 맡겼기에 지도자나 백성이나 조급하지도 않았고 사사롭게 이해에 얽혀 경망하게 판단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개인에게는 인격이요, 나라에는 국격(國格)이 있었다.
 역시 조선 때 이덕형(李德馨1561-1613)도 서른한 살에 예조참판과 대제학을 겸직했다. 무척 빠른 승차요 큰 벼슬이었다. 대제학에 천거될 때 김귀영(金貴榮)은 찬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연장자보다 먼저 대제학에 이르니, 재주와 덕이 노숙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덕형은 감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젊은이들의 빠른 출세를 보면서 한번 쯤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일찍 높은 관직에 올랐어도 남긴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예순 다섯만 먹으면 인생에서 퇴출이라도 시키듯 내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노인들의 지혜와 덕은 아예 쓸모가 없어졌다. 젊어서 좋고 싱싱하기 때문에 보기에도 신선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보완할 방법은 없다. 지긋한 나이에 후덕한 행동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무게와 격이 없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은 듯이 경쟁하고 죽자 살자 싸우기만 하는 세상에서는 좀 느리더라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한 뒤에 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놀랄만한 일을 벌여야지 일하는 것 같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만 해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능하다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하는 세상인지라 자극적인 일에만 반응하게 된다. 남들이 튀니까 자신도 튀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이 안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설익고 덜 된 행동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지방마다, 단체마다, 어디를 막론하고 나이 먹은 사람을 홀대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권위를 잃는 일이 한두 곳이 아니다. 권위를 잃으면 싸움이 일고, 싸우면 풍비박산이 되는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백범 김구선생님은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집안이 불화(不和)하면 망하듯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和氣)가 빛나야 한다.'고 말했다. 화기는 즐겁고 조화로운 기운이다. 얼굴에서 즐겁고 조화로운 기운이 솟구친다면 음모와 모략, 반대와 갈등이 사라질 것은 뻔하다. 백범은 알기 쉽게 우리들을 깨우쳐 주었다.

'석도익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 이야기  (0) 2015.03.28
가시나무새 같은 남자  (0) 2015.03.16
완장  (0) 2015.03.01
상전벽해  (0) 2015.02.18
무궁화를 홍천군화로 하자  (0)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