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 弓
석 도 익
쏜 살 같이
멀리 보이는 과녁을 향해 양다리에 균형을 맞추어 힘을 주고 몸을 바로 세운다. 천천히 활을 들어 화살을 정확하게 메기고 활 잡은 손에 힘을 고정시키고 과녁에 화살을 겨냥하며 화살촉 선이 활에 닫는 감각을 느낄 때까지 시위를 힘 있게 당긴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조준하여 과녁중심에 살촉이 보이면 미련 없이 화살을 놓는다.
활을 떠난 화살은 정말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쏜 살같이 날아가는 화살을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에 비유하고 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한번 시위를 당겨 쏜 화살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잘 쏜 화살은 과녁을 명중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화살은 빗나가 버리고 만다.
전쟁과 평화
우리 인류가 제일 먼저 만든 무기가 활일 것이다. 먼 거리에 있는 짐승을 사냥하기 위하여 만들어 사용하다가 전쟁무기로 이용 되였을 것이고 평화 시에는 경기로 이용되어 전쟁과 평화의 각기 다른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활은 총이 출현하면서 무기로서 위력을 상실하고, 오늘날에는 스포츠 종목으로 궁도가 대중에 보급되었다. 궁도는 국궁(國弓)과 양궁(洋弓)으로 나뉘는데, 예로부터 한민족에게는 가장 대중화된 무예이자, 심신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편이었다.
활과 살
부족국가에서 무기로 사용한 활은 숙신(肅愼)의 호시석노(醴矢石썬), 동예(東濊)의 단궁(檀弓), 고구려의 맥궁(貊弓:각궁)이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르다. 호시(醴矢)란 광대싸리로 만든 화살로서 길이가 1자 8치(54.54㎝)이며, 살촉은 백두산에서 산출되는 흑요석(黑曜石)으로 만들었다. 고구려의 맥궁(貊弓)은 각궁(角弓)이었으며, 222년(고구려 산상왕 26) 이전부터 사용하였다. 신라에서는 558년(진흥왕 19)에 나마(奈麻) 신득(身得)이 포궁(砲弓)을 제작하였으며, 백제에서는 이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활은 크게 나누어 장궁(長弓)과 단궁(短弓)이 있고, 구조상 환목궁(丸木弓)과 복합궁(複合弓)으로 나뉘는데, 한국의 활은 복합단궁(複合短弓)이다.
그러나 현재 내려오고 있는 각궁은 옛날의 무기로 생산된 때와는 달리 취미생활에 의존한 개인의 경영에 의하여 제작된다. 국궁은 주로 노인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양궁의 보급과 더불어 젊은 층에도 여가 스포츠로 보급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혼자서도 즐겁게 수련할 수 있으며, 정신 수양과 건강에도 좋다는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궁도(弓道)
궁도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은 도리를 갖도록 하고 있다.
쏘는 사람의 기예(技藝)가 옳고 사용하는 궁구(弓具)가 적합하면 반드시 과녁에 적중하며, 쏘아서 적중하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시 살펴야 한다(發而不中 反求諸己).
궁도를 연마한 사람이면 활을 사심(邪心) 없이 당겨서 심기(心氣)를 집중하고, 활을 쏜다는 의식을 버리고 발사한다.
궁술(弓術)은 넓은 의미로는 궁도(弓道)에 속하지만, 궁술 그 자체는 궁도의 대도(大道)에 입문(入門)하는 길을 터득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수덕(修德)에 철저하고 일상생활 자체가 바르고 참되어야만 비로소 궁도를 터득할 수 있다.
궁도의 목적은 활을 쏘는 일을 통하여 모든 인간사에 대한 도(道)를 함께 닦는 데 있다. 즉, 내면적인 정신과 사상의 정화는 물론, 외면적인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르기까지 평생 덕을 쌓고 실행해야 한다.
서로 존경하며 진심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선후배의 도를 실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궁도란 모든 인간행위에서 대의(大義)에 어긋남이 없도록 수양을 거듭하여 남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또 궁도에는 9가지 지켜야 할 계훈(戒訓)을 두고 있다.
사랑과 덕행으로 본을 보인다(仁愛德行).
겸손하고 성실하게 행한다(誠實謙遜)
행실을 신중히 하고 절조를 굳게 지킨다(自重節操).
예의범절을 엄격히 지킨다(禮儀嚴守).
청렴 겸직하고 과감하며 용감하게 행한다(兼直果敢)
활을 쏠 때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習射無言)
마음과 몸을 항상 바르게 한다(正心正己)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不怨勝者)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莫彎他弓).
궁도에 사용되는 궁의 종류는 크게 각궁(角弓)․정량궁(正兩弓)․예궁(禮宮)․목궁(木弓)․철궁(鐵弓)․단궁(檀弓)․죽궁(竹弓)․고궁․철태궁(鐵胎弓)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고궁․정량궁․예궁은 넓은 의미에서 각궁에 속하며, 목궁․죽궁․철궁․철태궁 등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단일궁에 속한다.
각궁(角弓)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대표적인 활로, 맥궁(貊弓)이라고도 한다. 크기로는 단궁(短弓), 형태면 에서는 만궁(彎弓), 재료면 에서는 합성궁에 속하며, 전시와 수렵용, 연락(宴樂)과 습사용(習射用)의 2가지가 있다. 보통 물소 뿔을 재료로 하며, 뿔의 재료나 길이, 용도 및 활의 크기, 활의 세기 등 세목별 분류에 따라 불리는 명칭이 다양하다. 현재의 각궁은 연락습사용으로 옛날의 활과 같고, 쏘는 사람의 힘에 따라 강약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222년(고구려 산상왕 26)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궁도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활이다.
정량궁(正兩弓)은 '큰활' 또는 육량궁(六兩弓)이라고도 한다. 과거시험을 위해 일정한 규격으로 제작한 활로, 길이는 약 5자 5치(167㎝)이며, 보통의 각궁보다 2배정도 길다. 예궁(禮弓)은 대궁(大弓)이라고도 하며, 길이는 6자(182㎝) 정도로 정량궁보다 약간 크다. 궁중에서 연사(燕射)와 반궁대사례(伴宮大射禮) 또는 향음주례(鄕飮酒禮) 등 주로 궁중 예식 때 사용하였다.
목궁(木弓)은 보통 호궁(弧弓)이라고도 하는데, 활고자(활 양쪽 끝의 꺾인 부분)는 뽕나무로, 활체는 광대싸리로 만든 이 호궁이 가장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제작법이 단순하고 제조비용이 싸기는 하지만 각궁에 비해 성능이 떨어져 일반 병사용 또는 보조 활로 사용되었다.
철궁(鐵弓)은 철재(鐵材)로 만든 활로서, 몸체는 놋쇠(황동)로 되어 있으며, 전시에만 사용하였다.
단궁(檀弓)은 박달나무로 만든 활로, 길이는 107~110㎝이다. 주로 수렵에 많이 사용되었다.
죽궁(竹弓)은 대나무를 사용하여 만든 활로 궁중연락(宮中宴樂)과 전시․수렵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우리말로는 '벙테기 활'이라고도 한다.
고궁은 '동개활' 또는 '고각궁'이라고도 한다. 활과 화살을 가죽주머니에 넣어서 등에 메고, 말을 타고 쏘는 아주 작은 활로서 전시에 기병용 활로 사용되었다.
철태궁(鐵胎弓)은 모양과 제조법이 각궁(角弓)과 비슷하지만 몸체인 간(幹)만은 철재로 만들었고, 전시와 수렵에 사용되었다. 그 밖에 포궁(砲弓)이 있는데, 558년(신라 진흥왕 19) 신득이 발명한 것으로 성(城) 위에 장치하여 적의 침공을 막기도 하고 수레에 설치하여 끌고 다니면서 쏘기도 하였다. 또 삼국시대에 발명된 구궁노(九弓弩)가 있는데 순수한 전시용으로, 일시에 많은 화살을 발사하여 1,000보(步) 거리까지 날릴 수 있었다. 재료는 나무와 철이며, 나무로 된 것은 일반 병사들이, 철로 된 것은 장군들이 사용하였다.
궁도에 필요한 장비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첫째, 활은 물소 뿔․뽕나무․화피․쇠심 등으로 다듬어 민어의 부레로 접착하여 만든 각궁(角弓)과 정량궁을 사용하는데, 대한궁도협회에서 공인을 받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시․도 대항전과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각궁만을 사용해야 한다.
둘째, 화살[矢]은 육량전(六兩箭)․편전(片箭)․장군전(將軍箭)․목전(木箭) 등 여러 종류가 있고, 예부터 전쟁용․시합용으로 구분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궁도에서는 죽시(竹矢)만 사용할 수 있고, 조준기 등과 같은 인위적인 기계장치는 부착할 수 없다.
셋째, 전통(箭筒)은 화살이 발달되면서부터 화살의 손상을 방지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종류는 피혁전통․죽전통․ 지전통․나전칠기전통 등이 있다.
넷째, 깍지는 활줄을 당기는 손의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것으로 손가락을 보호하고 화살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기구이다. 종류는 쇠뿔로 만든 것과 다른 단단한 각질로 만든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섯째, 궁대는 화살을 쏠 때 화살을 꽂기 위해 허리에 차는 천으로 만든 끈이며, 활을 넣어둘 수 있도록 만든 통이다.
궁도장(정亭)
궁도 시설에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사대(射臺)와 과녁을 들 수 있는데, 경기에서 정하고 있는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145m이다. 그밖에 관중의 안전을 위한 대피소와 과녁 후면의 안전지대, 화살을 보호할 수 있는 과녁터, 풍향기, 관중석, 기(旗) 게양대, 수거한 화살을 운반하는 운시대(運矢臺:살날이), 활 걸이, 화살꽂이, 확성기 등을 갖추어야 한다.
경기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봄 ․가을이면 한량(閑良)들이 하루를 택하여 편을 가르거나 또는 개인전의 궁술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두 사정(射亭)에서 한량으로만 편을 짜서 하던 것을 한량편사(閑良便射)라고 하였다. 시합은 80간거리의 사정(射程)에 높이 12자, 너비 8자의 목판으로 된 과녁을 만들어 세우고 원선(圓線)으로 중심을 표시하여 사정(射亭)에서 사수들이 번갈아 활을 쏘는데, 이때 기생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활 쏘는 한량들 뒤에 나란히 줄지어 서서 소리를 하여 사수들을 격려하였다. 쏜 화살 5개가 과녁에 바로 적중된 것을 신호수가 신호로 알리면 기생들은 북을 울리고 지화자…라는 소리를 하면서 한바탕 춤을 추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이 활쏘기를 즐기어 이를 장려하였기 때문에, 문과 출신의 문신들도 활을 잘 쏘았으며 임금과 함께 궁술대회를 자주 열었다. 신숙주(申叔舟)는 활 쏘는 일로써 큰일을 삼고 있다 하여 이를 자주 하지 말도록 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세조는 종친과 공신을 궁중 후원에 불러 궁술대회를 열기도 하고, 때때로 무신들을 불러 활쏘기를 하여 우수한 자에게 상을 주거나 승급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현대의 궁도 경기는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구별된다. 단체전은 시․도대항전과 정대항전으로 나뉘며,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기록경기를 원칙으로 하여 승부를 결정한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는 시․도 대항전은 대표 7명이 참가해 상위자 5명의 기록 합계로 순위를 결정하고, 정대항전은 사정(射亭:활을 쏘는 터 또는 정자) 대표 5명이 출전해 순위를 결정한다. 개인전에는 남자개인전과 여자개인전이 있다.
경기방법은, 각 대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시․도 대항전은 각 시․도 대표 1명씩을 1개조로, 정대항전은 같은 사정에서 출전한 5명을 1개조로, 개인전은 참가 신청 순서에 따라 7명을 1개조로 하여 대(같이 서서 한 과녁을 향해 쏘는 1개조)를 편성한다. 이어 각 대는 교대로 나와 1순(順), 즉 한 대에 편성된 각 선수가 1발씩 돌아가면서 쏘기 시작해 모두 3발 또는 5발씩을 쏘게 된다. 첫 순을 초순(初順), 둘째 순을 중순(中順), 셋째 순을 종순(終順)이라 한다. 1순(5발)을 모두 관중시키면 몰기(沒技)라 한다. 대회 주최 측의 결정에 따라 3순으로 경기를 할 수도 있고, 단체전은 토너먼트로 실시할 수도 있다.
사기
사기(射技)는 활을 쏘는 기예로, 사예(射藝)라고도 한다. 이에는 활을 쏘는 자세․방법․기술 등이 포함된다. 즉 활을 쏠 때 숨을 들이마시고 내 쉬는 방법, 신체 각 부위의 자세, 활을 쏘기 전의 마음가짐 등 세세한 요소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만큼 궁도에서 사기는 중요하고 한다.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대에서는 방법을 들 수 있는데, 첫째 과녁을 중심으로 하여 사선(射線) 위에서 왼발은 뒷굽이 사선에 닿도록 하고 약 30°로 벌린 우측으로 선다. 둘째, 발은 어깨 너비만큼 벌린다. 셋째, 신체의 3/4 정도가 과녁을 향한다. 즉, 비정비팔(非丁非八)로 서면 삼각(三脚)의 효력이 생겨 안전성이 가장 높다.
다음으로 마음가짐을 들 수 있다. 먼저 과녁에 마음과 눈을 두고, 어깨를 자연스럽게 편 다음, 몸의 중심을 허리 중앙에 둔다. 이어 상반신을 약 20°로 약간 앞으로 구부린다. 이러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갖추어진 뒤에야 비로소 화살 끼우기, 거궁(擧弓), 당김, 조르기, 유전(留箭), 아래 세 손가락 조준, 이시(離矢), 잔심(殘心)과 잔신(殘身) 등 나머지 자세로 들어갈 수 있다.
끝.
(자료발취: 대한궁도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