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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와 감동의 눈물

돌 박사 2024. 9. 21. 11:13


~ 물취이모(勿取以貌) ~

* 어느 회사의 면접시험장에서 면접관이 얼굴이 긴 응시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마치 넋 나간 사람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얼굴이 무척 길구먼.
자네 혹시 머저리와 바보가 어떻게 다른지 아나?”

면접관은 이 말을 들은 청년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네! 결례되는 질문을 하는 쪽이 머저리이고, 그런 말에 대답하는 쪽이 바보입니다.”

시험 결과 이 청년은 합격이 되었습니다.
실제 시험장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은 없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이번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배재학당에 입학할 때 미국인 선교사 앞에서 구술시험을 치렀습니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평양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800리쯤 됩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공부하지 않고 왜 먼 서울까지 왔는가?”

그러자 도산이 선교사의 눈을 응시하면서 반문하였습니다.
“미국은 서울에서 몇 리입니까?”
“8만 리쯤 되지.”
“8만 리 밖에서 가르쳐주러 왔는데 겨우 800리 거리를 찾아오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술시험은 끝났고, 도산은 배재학당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재치와 배짱 그리고 면접관의 심리를 꿰뚫는 지혜가 노련한 선교사를 감동시킨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소개 할 일화는  스탠포드대학의 설립 비화입니다.

어느 날, 남루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하버드대학교에 기부하겠다며 총장을 찾아왔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손님을 본 비서가 순서를 늦추는 바람에 그들은 몇 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총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총장은 거만한 말투로 귀찮다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 건물은 1개 동당 750만 달러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대형 건물입니다.
얼마나 기부하려고 합니까?”

그때 부인이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겨우 750만 달러 정도로 건물 한 동을 짓는다면 죽은 아들을 위해 대학교 전체를 통째로 세우는 것이 낫겠네요.
여보, 갑시다.”

노부부는 죽은 아들을 위해 유산을 모두 교육 사업에 기부하려고 하버드대학교를 찾았으나 거만한 그들의 태도를 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새로운 대학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대학이 노부부의 성을 딴 스탠포드대학교입니다.
현재 스탠포드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일류 대학이 되어 하버드대학교와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을 뒤늦게 알게 된 하버드대학교에서는 학교 정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 Don’t judge a book its cover. ]

사람의 외모를 책의 표지에 비유해서 ‘책의 표지가 멋지다고 해서 반드시 그 책의 내용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이 말씀은 위의 세 가지 일화가 공통으로 말하는 의미입니다.
이를 사자성어로 '물취이모(勿取以貌)'라 합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인데 그 오류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도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취이모(勿取以貌)'는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를 막론하고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즐거운 화요일 입니다 👍♡

🤩🤩🤩🤩🤩🤩🤩(커피)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슬펐던 연설...

"여러분, 난 지금 여러분들과 마주 서있으면서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써 과연 내가 무엇을 했나 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반성합니다."

"내가 바로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오게 한 죄인입니다.    

우리땅엔, 먹고 살 것이 없어서 여러분들이 이 머나먼 타향에 와서

달러를 벌고 있습니다."

"이 외로운 시골 끝도 없는 갱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고 있습니다.

간호원들은 자기의 체구보다 두배나 큰 독일 환자들의 시중을 들다가

2년도 못되서 허리디스크에 걸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이래야합니까? 이게 다 나라가 못사는 탓입니다.

그러나, 나한테 시간과 기회를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여러분들과 같이 다른 나라에 팔려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하겠습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 주세요.

돈 좀 빌려 주세요,"

- 박정희 대통령, 서독 총리와의 면담에서 -

독일 광산에서 노역하던 한국인 아버지들

가족을 뒤로하고 서독으로 떠나는 간호사 어머니

여러분 만리 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정부의 초청으로 여러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있는데
그중에서 한국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대통령은 원고를 보지않고 즉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은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때문에 이 먼이국에 찾아왔는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가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박대통령의 연설은 계속되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잊은채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육영수여사도.. 수행원도..
심지어 옆에 있던 서독 대통령까지도 눈물을 훔쳤다.

결국 연설은 어느대목에선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대통령이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에 있던 서독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

파독광부와 간호사가 보낸 외환은 당시 대한민국 GNP의 2%에 달했다.

피와 땀으로 만든 경제성장의 종자돈이었다.

박정희

"우리도 중화학 산업하게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케네디

"돈 못주겠다. 그냥 경공업(다람쥐가죽,가발 등)이나 해라."

이후 서독에 가서 구걸, 베트남 파병으로

포항제철, 경부선 건설 등 산업화를 이룩.

대통령 눈도 붉게 충혈돼 "나라와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먼 이국서 고생"

경호 오토바이 독일이 붙여줘… 대통령도 우리도 그때는 너무나 초라했었죠

"광산에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어요.
눈이 얼마나 충혈됐던지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독일 쾰른에 사는 파독 광부 출신 유재천(73)씨는 지난 반세기 동안 사진 한 장을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지난달 16일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유씨는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1964년 12월 10일 파독 광부들이 일하던 함보른 탄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연단에 서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모습

1964년 12월 10일 독일 뤼프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방독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함보른 광산을 방문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앞에 두고 박 대통령 내외는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왼쪽은 당시 함보른 광산 사장. /유재천씨 제공

당시 탄광회사 강당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250여명이 모였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애국가가 시작되자 앞자리 간호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두 울먹이며 애국가를 불렀다. 대통령 내외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찍었다.

박 대통령이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하자,
강당은 '꺼이꺼이'하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조립씨는 "대통령이 '참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이 먼 타지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하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그때 독일에 돈 빌리러 왔던 거잖아요. 말이 차관이지 사실 구걸이었지요.
독일에서 대통령 경호 오토바이 다섯 대를 붙여줬는데 참 초라해 보였어요.
그때 우리는 가엾은 대통령이었고, 가엾은 국민이었지요"라고 말했다.

조씨도 반세기 동안 고이 간직해온 물건이 있다. 그는 장롱 속에서 주황색 수건을 꺼냈다.

수건에는 무궁화 그림과 함께 '대한민국 중추절'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한국 정부가 보낸 추석 선물이다.
"박 대통령 때는 해마다 김치 통조림 같은 선물을 보내주곤 했어요."

남은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

인플레이션 500% 라는 지옥같은 나라.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사는 가난한 나라.
'세계 최빈국'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의 국민소득은 76불 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고,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이었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독재자'라고 부른다.


나는 나라를 위한 필요에 의한 독재 라고 생각한다.

박정희만큼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산업화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것이다.
    -- (폄글) --

https://www.youtube.com/watch?v=gG0JgUyObRc



🏃건강하고 행복한                        
     즐거운 나날이 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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