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 인성 심리 문학 시사 >

김유정 문학 이야기

돌 박사 2023. 8. 20. 16:19

    

          
김유정 문학이야기
         소설가 석 도 익

< 서문 >
홍천은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넓은 내 가 흐르는 고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까운 춘천 또한 봄 춘과 내천이니 강원 도청이 있는 춘천은 순우리말로 봄에 냇물이 흐른다는 봄에 고장입니다.
이 아름다운 봄의 고장에 봄의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김유정 작가입니다. 김유정 작가는 짧은 생애에 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그 작품 속에는 그가 바라는 희망 그림 움 기다림을 봄으로 담아냈습니다. 대표적인 봄.봄은 봄 하나로 표현하지 않고 당시에는 쓰지 않았던 점을 가운데 찍음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었일까요?
  그가 태어난 이곳은 신동면 증리라는 마을입니다.
금병산이라는 이름과 같이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산자락 밑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은 떡을 찌는 시루같이 생겼다하여 시루 증(甑)자를 썼고 시루라는 어원이 실례로 변화 되어 실례마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문인들이 많아 이분들의 문학과 업적 그리고  뜻을 기리고자 많은 문학학관이 각 지방에 설립되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 홍천도 홍천문학관을 설립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학관이라는 건물을 짓고 그 문인의 유품과 업적들을 전시 보관하며 각종 행사를 통해 그분의 문학사를 조명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곳은 좀 다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곳은 문학관이라 부르지 않고  김유정 문학촌 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김유정 문학 촌이라고 하지요. 그 이유는 김유정 작가의 유품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작고당시에 누님네 집 과수원 토방에서 기거하다가 별세했으며 그의 육필원고 등은 사후 그의 친구인 안희남이(최승희의 남편) 보관하고 있다가 북쪽으로 간 후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보여드릴만한 유품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유정 작가의 고향인 이곳 과 그가 남긴 작품 12편이 모두 이 마을을 배경으로 쓰여 졌고 작품속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 특히 봄.봄과 동백꽃에 등장하는 점순이는 신례마을 언덕에 지금도 집터가 있습니다. 대개는 실존인물이 이었다는 점에서 그 어느 유품보다도 생생한 근거가 되고 있어 이 마을 전체를 아울러 김유정 문학 촌이라고 명명되었고 특히 우리고장 전상국 소설가님이 만든 업적이기도 합니다.
실례이야기 길을 약 3시간 정도 걸으며 김유정 작품에 배경 지와 등장인물들이 살던 곳 등을 보고 걸으며 해설자의 작품이야기를 듣는다면 1930년대의 순수문학의 거장인 김유정 작가의 작품세계와 당시 삶의 질곡을 모두 이해하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실체를 보고 가는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 김유정 작가 가보 >
김유정 선생님은 평산 김씨의 가문으로 그의 10대 조부 김육은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대동법을 실시하는 주역 이였으며 실학의 선구자 이었다. 9대 조부 김우명은 조선조 18대왕 현종의 장인(부원군)으로 즉 명성왕후 의 친정 아버지였으니 명문 귀족이었다.(현종은 계비가 없음)
김우명이 별세하자 순종이 상여를 하사하여 장례를 치르게 했으며 당시의 상여는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유정 작가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려고 온갖 술책을 쓰던  1908년 1월 11일 아버지 김춘식 어머니 청송심씨 사이에 2남 6녀 중 7번째 아들로 바로 이곳 집에서 태어 낳습니다.
위로는 형님이 한분이고 모두 누나며 여동생인 집안에서 자라다보니 여성스러움이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은 여리고 병약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횟배를 자주 알았지요. 당시는 구충제도 없는데다 채소를 먹는 식단이라 누구나 회충을 배에 키우며 함께 살았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회충이 없을 겁니다. 구충제를 먹어서 없기도 하겠지만  아마 농약을 많이 섭취하여 회충이 살아남지 못했을 런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김유정 선생이 회충이 배에서 밥 달라고 꿈틀거리면 배가 아프겠지요.
  배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할아버지는 의례히 자신이 피우던 담뱃대에 밤배를 피워서 손자인 김유정이 빨게 하였습니다. 담배연기가 몸속에 들어가면 요동을 치던 회충도 정신이 몽롱하여 쓰러지고 잠잠해지니 배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로서 5살부터 김유정선생님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지요. 정말 어린나이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줄담배를 피우다 결국은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다가  29세라는 청년의 나이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 김유정작가에게 닥친 불운 >
일제 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민족에게 닥친 식민생활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주권을 잃은 백성으로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되고서야 나라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겼고 배우지 못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 “이제 아이들만은 가르쳐야 한다.” 는 자각정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양반집 아이들이나 신학문을 가르치고 부잣집들은 동네 서당에서 한문정도나 깨우치었고 보통집 에서는 여자아이들은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던 때다.
우리나라의 향학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김유정작가의 집에도 7남매나 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서울로 가야 했을 것이다.
  서울 정동에 99칸짜리 좋은 대 저택을 사고 이사를 했다. 그러나 행복만이 계속된 것이 아니라 선생의 나이 7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세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니 어린나이에 고아가되어 누님 집이나 형님네 집을 돌며 얹혀 사는 신세였습니다.

< 김유정 작가의 학업과 연애 >1920년 재동공립보통학교 입학.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검정으로 입학.1929년 3월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1931년 연희전문학교 중퇴.4월20일, 보성전문학교에 다시 입학. 이후 자퇴.1932년 브나로드운동에 참여.
선생님은 연희전문에 입학하게 됩니다. 지금의 연세대학교가 되지요.
대학생이 된 선생에게 일생에 전환기가 될 운명에 여인을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되어 혼신을 다한 짝사랑을 하게 됩니다.
종로 어느 목욕탕에서 나오는 물기 있는 긴 머리에 여인인 박록주를 본 순간 그는 학교를 제적당하면서도 구애를 합니다.
당시의 박록주는 기생 이였지만 조선제일의 명창으로 판소리 춘향가의 대가로 지금의 일류 스타였지요. 김유정보다는 세 살이 연상인 그는 김유정 선생님이 구애와 회유 혈서를 써가며 협박까지 하며 만나달라고 하지만 끝까지 만나주지 않자 실연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보아주지도 않는 기생에게 그토록 구애한 데에는 7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똑같이 닮은 여인이 박록주 엇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유정이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모습을 박록주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 박록주의 수양아들 명창 조상현 -

고향에 내려온 선생님은 당시 브나로드운동에 관심이 있었기에 심훈의 상록수 소설에서처럼 실례마을에 금병의숙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계몽운동을 한동안 하다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다시 뜻을 세우고 서울로 올라가서 작품 활동에 들어갑니다.
< 김유정 작가의 작품 활동 >
김유정작가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서 자신의 춘천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1933년부터 1937년 까지 짧은 기간에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소설 수필 서간문 번역 등 70여 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33년 1월 ‘산골 나그네’ 단편소설을 탈고 첫 작품발표를 잡지 제일선에 선보였고 1935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소낙비’, 조선중앙일보신춘문예에 ‘노다지’가 각각 당선 되였습니다.
당시 한국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작가라고 칭송받는 김유정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자. 여성지에서 인터뷰를 실었는데 이때 함께 실린 박봉자라는 여인에게 또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박봉자는 이화여전을 나온 수재로 문인인 박용철의 누이동생이었으며 기자였다고 합니다. 당시 잡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장래에 배우자를 택한다면 어떤 사람이 좋겠느냐 라는 질문에 그는 문인  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문인은  마음이 넓고, 유머감각과 포옹력이 많을 것 같아서 결혼 생활에 활력이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을 본 김유정은 그 사람이 자신이 라는 생각에 무조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김유정은 또다시 사랑의 열병에 빠져서 짝사랑을 하게 되지만 이여인 마저도 30여 통의 구구절절한 연민의 구애편지를 보냈으나 단 한 줄의 답장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벅봉자 여인은 후에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대로 문인인 김환태 와 결혼하였으니 그의 멍든 가슴이 어떠했겠습니까? 이후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모정을 그리워했던 선생님은 어머니를 닮은 박록주에게서도 거절당하고 문인이 좋다하던 운명의 박봉자 여인에게도 무시당한 실연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이후 유정작가에게는 여자는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도 없는 게 당연했고요. 젊은 29세에 병마가 깊어진 이른 봄 누님네 사과밭 움막에서 홀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 김유정 작가의 작품세계 >
김유정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전혀 숨어있지 않은 그 작품상황에 일어난 이야기들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기록영화 같다고나 할까 어쨋던 작품속 인물들의 일상 언어와 행동도 전혀 작가가 다듬지 않은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합니다. 그러므로 접근하기 어렵다 던가 난해하지 않고 소시민 누구나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해학과 구미당기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이곳을 찾는 분들조차 여러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작품이 재미없어서 어려워서 아니고 접하지 못해서 읽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김유전작품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가난과 무지에 살기 힘들었던 우리들의 삶을 그린 것입니다. 살기위해서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해서 무엇이 던지 해야 했던 원초적 본능 속에서는 정조관념 따위는 배부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아이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기 위해서는 아내가 들병이로 나서야 했습니다. 들병이란 술병을 들고 남자들에게 찾아 가서 술을 파는 여인을 말합니다. 강원도에서는 못된 욕이 들병이나 돼 라는 것입니다.
실제 김유정의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소낙비에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남편의 놀음판에 판돈을 마련하기 귀해서 이주사에게 몸을 파는 이야기입니다.
이토록 삶의 밑바탕에 애환을 써야하는 작품이니 청소년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것이기에 19금이 되어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시기에 김유정 작품을 못 보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책을 멀리하게 되니 자연 많이 읽혀질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봄,봄이나 동백꽃은 다행하게 교과서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그나마 읽혀졌는데 동백꽃에서도 점순이 어머니가 큰소리로 점순아~ 부르지 않았다면 그것도 19금이 되었을 겁니다.    
김유정작가는 우리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 흔하게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별로 쓰여 지질 않았습니다.
우리민족의 정서는 동적이 아니라  정적입니다. 즉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 보다는 수동적이어서 양보하고 예의를 지키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에 접하는 “사랑”이란 단어는 여러모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남녀 간에 쓰일 때에는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단어는 능동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단어 뒤에 붙이는 수식어는 사랑한다. 사랑했다. 사랑하자. 등 아주 활달하면서도 막힘없는 능동적인 단어입니다. 여기다 요즘은 확실한 행동을 더 추가합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사랑에는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다.” 라고
이렇게 능동적인 단어라서 거리낌 없이 누구나 사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내가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짝사랑이란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정서는 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인 면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런 능동적인 말을 흔히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젊은이들은 사랑표현을 잘하고 자기의사를 직접표현할 수 있는 능동형으로 변하여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뒤에서고 승강기 안에서는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동형이며 정적입니다.
옛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정인이라 하였고 연애를 하면 정분났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능동적인 사랑보다는 수동적인 정이었지요. 정은 “정이 든다.” “정이 들다“고 하는데 하루아침에 정들었다고 하지는 못합니다. 서로 깊이알고 부비고 살아가면서 미운정도 고운 정으로 바뀌는 그야말로 서서히 물들 듯이 드는 것이 정입니다.
사랑은 하다 싫어지면 안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들었다가 헤어지려면 “정을 뗀다.”고 한다,
사랑은 미움과 맞바꾼다. 죽자 살자 너 없으면 못산다고 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게 되는 순간부터는 서로 원수가 되고 “나쁜 놈” “못된 년”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정들었다가 해어지려고 정을 떼어도 미련이 남습니다.
김유정 작가의 작품은 정의 문학입니다.
한눈에 반하여 불붙는 사랑은 아닙니다. 두고두고 사귀며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지내는 동안 미운정도 고운 정으로 들어서 너 가 나같이 느껴지는 정이 들어버려 “아이고 이 웬수야!”  하면서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게 정이라는 겁니다.
정을 나누며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비며 살아가는 우리네 민초들의 삶을 있는 사실그대로 글로 옮겨 놓은 이야기가 김유정의 작품세계입니다.

< 김유정의 작품 속으로 >

김유정의 작품은 정입니다. 정은 들인다고 하고 사랑은 한다고 합니다.
정은 뗀다고 하고 사랑은 안한다고 하지요. 이처럼 사랑은 능동적 이여서 즉흥적이고 이기적이며 쉬운 반면에 정은 수동적이고 오래두고 삭힌 것이고 희생이며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격랑기인 나라 잃은 시대의 작가로서 울분과 열등을 다 안으로 삭히고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작품에도 국가나 정치인이나 세도가들과 관리들을 저주하거나 고발하거나 미워하는 대목 하나 없이 작품을 썼다는 것입니다.
다만 시대성을 고발한 작품이 하나 있긴 합니다.
만무방이란 작품에서 동생인 응오 네가 소작하는 논에 밤에 도둑이 와서 벼를 훔쳐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형인 응칠이가 숨어 있다가 도둑놈이 벼를 베자 달려가서 때려잡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이 논을 경작한 동생 응오였지요.
농지를 얻어 농사지어 추수를 하면 독식을 7대3의 비율로 7은 지주에게 주어야 하고 나머지 3도 일본에 공출하고 장리곡식 주고나면 당장에 먹고살기도 힘든지라 다시 장리곡식을 얻어다 먹고 살아야하는 가난의 고리에서 빚어지는 현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가 농사지은 벼를 밤에 몰래 훔쳐야 하는 도둑이 되어야 할만치 각박한 현실을 고발한 것입니다.

이제 김유정 선생님의 정이 질펀하게 녹아 삶을 지탱해 나가는 해학적이면서도 크게 웃을 수 없고 코믹하면서도 눈물이 나는 나라 없는 민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간단간단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곳은 춘천 양구 화천 홍천 인제 등지에서 살기 어려운 농촌을 떠나서 한양(지금의 서울)가서 남자는 역전가에서 지게로 짐이라도 날라서 돈을 벌고 여인은 대가 집에 안잠자기(가정부)라도 하여 살아가려고 떠나가는 길목이 실레마을인 이곳입니다.
여러분도 열차를 타고 와서 김유정 역에서 내렸고 다시 서울 쪽으로 갈 때도 그 열차를 타고 갈 겁니다.

여러분은 김유정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보았을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은 단편소설 31편과 수필 12편 서간 5편 설문1편 번역 2편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잘 쓰여 지질 않았고 정치나 사회에 대한 원망이나 규탄 같은 내용은 어디를 봐도 없는 정말 보가 드문 순수문학입니다. 작가가 썼음에도 작가의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사실 속에 이야기를 그대로 책에 옮겨놓은 것 같은 작품이 그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그의 작품 두 편 간단하게 소개함으로서 선생님의 작품세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김유정 작가의 처녀작으로 제일선이란 잡지에 1933년 3월 25세에 발표한 소설 산골나그네라는 작품도 이곳 실레마을을 무대로 하여 쓴 작품입니다.
제목이 산골나그네라 나그네라면 우리는 남자를 고정관념으로 생각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자가 나그네입니다. 제목부터 반전입니다.
  여기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마을에 주막집이 있었는데 주인은 나이 많은 여인이 나이든 총각인 아들 덕돌이 와 살고 있었지요.  아들의 나이가 혼기를 놓치고 있어 어머니인 주막집 여인은 근심이 태산이지만 누가 시집을 옵니까? 주막 술집을 하는 집에다 나이 많은 아들에게 선 듯 시집보낼 사람이 나설리 없지요.
매일 근심 속에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국밥이나 팔고 마을 청장년들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주막집은 늘 그날이 그날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땅거미가 금병산에서 부터 마을로 기어 내려와 어둠으로 덮어갈 때 어떤 여인이 이집에 들어 왔지요.
가녀린 여인이 하룻밤 재워달라는 것입니다. 주막여인은 길손여인을 안쓰럽게 여겨 먹다 남겨둔 옥수수자루를 주니 허겁스레 배를 채우고 나른히 앉자 주막여인은 이런저런 사정이야기를 물었으나 남편은 죽고 혼자 몸으로 살기 힘들어서 서울로 살러간다 하였지요.
이런저런 이야기에 밤이 이슥해서야 마실 갔다가 돌아온 덕돌이에게 친구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고는 여인과 나란히 누운 주막집 주모는 여인의 의중을 떠보기 위하여 많은 이야기를 밤이 깊도록 합니다.
여인의 나이는 19세며 남편이 죽어서 혼자 몸이 되니 여기서는 살 수 없어 식모살이라도 하려고 서울로 가는 길이랍니다.
주모는 이 여인을 어떻게 하든지 맘을 돌려서 아들의 여자로 들어 안치려고 회유를 하지요.
이렇게 참한처자가 눈감으면 코도 베어간다는 서울에 가서 어찌 살려 고 하느냐며 이곳에서 정붙이고 같이 살자 하는데 여인은 마냥 다소곳이 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길을 떠나려는 나그네 여인을 집 좀 보아주면서 몸 좀 쉬라하고 주막여인은 밀린 술값을 받으러 나갑니다.
장사도 안 되고 먹을 양식도 없어 그동안 깔아놓은 외상술값을 받아야 당장 양식을 하겠기에 좁쌀 몇 되받아 추슬러 가지고 돌아와 나그네 여인과 밥을 지어 먹고 있자니 갑자기 슬꾼 들이 몰려옵니다.
이 주막에 젊은 갈보 있다는 입소문이 마을에 퍼져서 젊은이들이 몰려온 거지요.
주막여인은 눈에 빛이 납니다. 오랜만에 손님들이 몰리니 살판났지요. 나그네여인과 같이 술상을 차리고 여인을 은근히 술시중을 들게 합니다.
나그네 여인이 함께 장사를 해주니 당장에 부자가 될 것 같습니다. 주모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여인에게 온갖 회유를 하여 결국에 아들과 혼인할 의사를 받아내지요.
덕돌이도 얼마 전에는 혼담이오가고 혼수준비까지 했었다가 선수금 30원을 가져오라는 바람에 돈을 구하지 못해서 결혼을 못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준비한 혼수로 하면 바로 되고 은비녀 은가락지만 특별하게 준비했답니다.
잔치다. 국수 누르고 술 사발 돌리고 마을이 흥건하였지요. 첫날밤을 치룬 덕돌이는 기분이 좋은지 일도 잘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밤 아들 덕돌이가 소리치는 바람에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보니 여자가 없어졌답니다. 아들의 옷도 가지고 갔는지 벌거벗은 채 이불을 앞으로 가리고 징징거립니다.
아들과 횃불을 들고 동네구석구석 찾아 다녀도 그림자도 없지요. 도적년에게 당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방안을 둘러보니 베개 밑에다 은비녀는 가지런히 놓고 갔습니다.
이 마을 건너 저편강가 외진 곳에는 벽이 허물어진 물레방아간이 있는데 방아는 돌아가지 않고 가끔은 밥을 찾아 흘러가는 뜬구름들의 하룻밤 숙소로 변하였는데 지금도 어둠속에 거지가 하나 지푸라기 위에 집단 같은 헐렁한 모양으로 외로 누워있습니다.
계집이 들어서서 남자를 흔들며 일어나 가자하며 옷을 입히고 부축하여 물레 방아간을 빠져나와 황망히 이끕니다.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덕돌이 목소리임이 짐작이갑니다. “ 아 얼른 오게유~”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잡아끌며 재촉하나 병든 몸이라 뒤뚱거리며 으슥한 산모퉁이 길로 사라집니다.
이 소설은 여기서 끝납니다. 나머지 아쉬운 부분은 독자가 생각하여 야할 몫입니다.

김유정선생님의 소설작품은 성인소설이며 19금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중에 유일하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동백꽃이 아닌가 합니다.
1936년 5월 조광에 발표된 동백꽃은 지주의 딸 점순이와 소작농의 아들과의 풋풋하고 가슴 설레이게 하는 순정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계절의 시작은 봄이지요.  봄은 시작을 알리고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봄의 색깔은 노란색이며 병아리도 노란색이고, 봄에 일찍이 피는 꽃들도 노란색입니다.
나무의 꽃 중에서 가장먼저 피어나는 꽃이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라고 하는 생강나무 꽃이고 이와 비슷한 꽃이 산수유입니다. 또한 개나리 민들레 등이 앞 다투어 노란 꽃을 피우면 봄이 무르익어 가지요.
남쪽에서 말하는 동백꽃은 빨갛게 핍니다. 김유정 작품에 나오는 동백꽃은 열매가 맺어 까맣게 익으면 기름을 짜서 여인들의 머릿기름으로 썼다 합니다.

동백꽃 작품은 금병산 자락에 지천으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동백나무가 많은 이 실례마을을 무대로 로 하고 있지요. 지주로부터 이 마을에 농지를 관리하는 마름인 점순네 아버지 덕에 우리가 여기로 처음 왔을 때부터 땅을 빌려주어 집을 짓고 살며 논을 소작하도록 주어 농사지으며 사는 것도 모두 점순네 은공임을 나도 압니다.
어머니는 혹시나 점순이와 붙어 다니다 마을에 안 좋은 소문이나 난다면 집안에 낭패라며 나에게 수시 이르기를 점순이를 멀리하라 하셨지요, 그러나 점순이는 틈만 있으면 내가있는 곳으로 찾아와서는 너네 이런 감자 없지 하며 감자를 내밀지 않나 사사건건 이런 식으로 배알을 뒤틀리게 하고는 먹지 않는다고 같이 놀지 않는다고 토라지고 합니다.
그렇게 점순이는 별짓을 다해도 내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이젠 우리 집 씨암탉을 못살게 굽니다. 싸움 잘하는 영악한 자기네 수탁을 안 고와서는 하구한날 쌈을 시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더합니다. 우리 닭이 피를 흘리며 실신상태에 이르기 까지 무엇이 그리 좋은 지 킬킬거리며 자꾸 쌈을 시키고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지게막대기로 점순네 수탁을 후려쳐서 죽이고 싶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하고 작대기로 엄한 땅을 후려쳐서 쌈을 말렸습니다.
나는 다음을 대비해서 우리 닭에게 용감하고 깡다구 세어지라고 고추장도 입을 벌리고 먹여놨지요.
오늘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는데 내려가는 길목 동백나무 숲에서 우리 닭이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점순이가 자기네 닭과 쌈을 시켜놓고 태연하게도 버들피리를 불고 앉아 있는 겁니다.
고추장을 먹여놔서 이길 줄 알았는데 주인인 점순 이는 자기네 닭이 불리하다 싶으면 우리 닭을 쥐어박아 놓고 자기네 닭이 유리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이를 본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지게를 벗어 내 동댕이치고 달려들어 지게막대기로 후려쳤습니다.
점순네 수탉은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갑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지요.
  “이놈아 너 왜 남의 집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며 일어나려 하자
“뭐 이 자식아 우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떠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집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 스럽고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이젠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 쫏길런지도 모릅니다.
나는 비실비실 일어나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 엉 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점순이가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터 안 그럴 테야?”
하고 물을 때야 비로서 살길을 찾은 듯싶었지요. 나는 눈물을 닦으며 뭘 안 그럴지는 명확히 모르면서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합니다.
“요담부터 또 그래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테니”
“그래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닭죽은 건 염려 말아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집니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으로 푹 파묻혀 버렸습니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 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해 졌습니다.

이 동백꽃이란 작품은 봄의 전령사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꿈이고 살렘입니다.
모처럼의 귀중한 시간에 강원도가 낳은 예술인이자 문학인 정을 이야기한 작가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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