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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

돌 박사 2022. 10. 26. 13:41


박정희 대통령

신문사에서 유럽의 몇 몇
잘사는 나라들을 취재하러 가서 독일에 들렸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의 주선으로 예정된 취재를 끝내고 짬이 생기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한 대학 후배의 안내로 스위스를 관광하게 되었다.
후배는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도로의 역사를 설명했다.

“아우토반은 1920년대에 시작 됐지만 30년대 초 히틀러가 다시 계속해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입니다. 히틀러는 이 도로를 전쟁을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 도로가 있었기에 세계 2차 대전 후 독일 경제부흥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고위직으로는 아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이 도로를 지나가 봤을 것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들려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에 관한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박 대통령의 방독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으로 유럽국가에 초청된 첫 사례일 겁니다.

그런데 당시 서독정부가 한국대통령을 초청하게 된 동기는 "한국인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근면 성실하고 헌신적인 태도 때문이었지요."

후배는 당시의 감격적인 장면들을 기록영화를 보는 것처럼 설명해 나갔다.

독일은 우리나라 광부가 가기 전엔 유고슬라비아나 터키 혹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광부들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너무도 게을러서 결국 광산을 폐쇄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이런 사실을 서독 신문들이 ‘한국인은 근면한 민족’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달 급여120달러에 보너스를 지급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고 한다.
또한 서독이 간호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자국민들이 ‘간호사는 3D업종’이라면서 기피하는 현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야간에 일할 독일인 간호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간호사들을 데려왔지만, 처음엔 후진국에서 왔다면서 주로 영안실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근무를 하게 했다.

그런데 한국인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염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유가족이나 관계자들이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서독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하면 한국인 간호사들은 주사도 놓고 환자를 극진히 보살피는 것을 보고 우리 간호사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위급한 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병원에 실려 오면 한국인 간호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피를 온 몸에 흠뻑 적시면서도 응급환자 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직접 수혈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등 그야말로 헌신적이었다.

이를 지켜 본 서독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천사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서독의 신문과 방송에 연일 대서특필됐다.
서독에서의 소식은 유럽 전체로 퍼졌고 유럽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미담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서독국민들은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을 한 번 초청해서 감사를 표하자”는 여론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의 경우는 치료차 병원에 오면 꼭 한국인 간호사만 찾곤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바그너 의장은
“한국인 간호사는 주사를 하나도 아프지 않게 놓는 기술자여서 그런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지켜 본 서독 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 초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했으나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일행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이 가진 비행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여객기 뿐인데 이것으로는 서독까지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내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군사 쿠데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고 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그 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궁리 끝에 서독에 특사를 보내 비행기 편을 얻어 보기로 했다.
창피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국정부는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던 최두선 선생을 특사로 보내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케 했다.

최 특사는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 간곡히 간청했다.
“각하, 우리나라에는 서독까지 올 수 있는 비행기가 없습니다.
각하께서 비행기 한 대를 보내주실 수 없으시겠는지요?"

뤼브케 대통령을 비롯해 서독의 관계자들은 최 특사의 이 말에 깜짝 놀라며 한참 말을 못했다고 한다.

결국 홍콩까지 오는 서독의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1.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석에 일반승객들을 탑승케 한 후 방콕, 뉴델리 , 카라치, 로마를 경유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1964년 12월 6일. 루프트한자 649 호기를 타고 간 박 대통령 일행은 쾰른 공항에서 뤼브케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뒤 다음날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인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 강당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탄가루에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목이 메어 애국가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더니 연설을 하던 중에 그만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간호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등켜 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는 광경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뤼브케 대통령도 울었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함께 울었다.

연설을 마치고 떠나는 대통령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이 차를 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를 외쳤습니다.

후배는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가슴이 벅찬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가슴이 뭉클했다.

뤼브케 대통령의 차를 함께 타고 돌아오던
박 대통령은 차속에서 계속 우셨다고 합니다. 뤼브케 대통령은 그런 우리 대통령에게 자기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대통령을 붙들고 우는 국민들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독사람들은 하나같이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방문한 후 서독정부는 제3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국에 차관을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국제관례가 있어 한국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1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1억5천 9백만 마르크 (상업차관 1억 5백만 마르크, 재정차관 5천 4백만 마르크)를 공여했다.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하는 송금액은 연간 5천만 달러였다고 한다. 이 달러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서 피땀 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 말로 조국 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유공자’ 들입니다."

그러면서 후배는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아우토반이 우리 대통령이 달렸던 바로 그 고속도로라고 강조했다.

“우리 대통령은 그날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 세 번이나 차를 세우고는 도로상태 등을 면밀히 조사하면서 우셨다고 합니다.”

취재 노트를 뒤적이면서 이런 유능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잘 사는 대한민국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금의 생각하면 걱정만 앞선다.
소득주도정책은 경제파탄을 자초했고, 안보 또한 위태하기만
한 나라, 희망이 없는 나라를 후손들에게 남겨주게 됐으니 어찌 잠이 오겠는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들에게는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장석영 교수

오늘이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신 10.26 제43주기입니다... 옷깃을 여미며 위대한 지도자를
이 나라에
전국민들게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위대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43주기를 맞이하여 현직 대통령이 추모식에 참여한게 뭐가 잘못도었다고 투정을 부리는 자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들인가?
그들은 무슨생각을 하고 살아가는가?
그것이 알고싶다. ㅡ돌ㅡ

세계 6위의 초석인
박정희 대통령  위대한 업적

업적들 날짜별로 엮은것 입니다

1961년06월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년06월11일 재건국민운동전개(국민의식개혁)
1961년06월14일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1961년07월03일 반공법 공포
1961년06월30일 능의선 개통
1961년07월14일 원자력개원
1961년07월22일 경제기획원신설
1961년08월03일 김포가도 포장 기공
1961년08월08일 황지지선 기공(1961.6.13~1962.12.10)
1961년08월19일 섬진강 수력발전소 건설
1961년09월21일 춘천수력발전소 기공
1961년09월23일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1961년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1962년01월01일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62년01월13일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62년01월20일 상법제정공포
1962년02월01일 국민은행 발족
1962년02월02일 기술진흥 5개년계획 발표
1962년02월03일 울산공업지구설정 및 기공
1962년02월10일 국토건설단 창단
1962년03월01일 공문서의 한글전용실시(70년1월1일 관계법 제정)
1962년03월19일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양주군 노해면
1962년04월02일 농촌진흥청 발족
1962년04월30일 해양경비대창설
1962년05월12일 반공센터창설
1962년06월01일 무역진흥공사발족
1962년06월18일 건설부 신설
1962년07월13일 국민 의무교육 실시
1962년07월19일 국립소년직업훈련소 낙성
1962년09월10일 남양송신소 준공
1962년10월20일 해운센터기공식
1962년10월23일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1962년11월04일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1962년11월06일 동해북부선(옥계-경포대간)개통
1962년11월18일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2년11월20일 제4시멘트공장건설
1962년11월25일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1962년11월28일 난민정착사업장 제방준공
1962년12월01일 마포아파트준공
1962년12월15일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1962년12월24일 생활보호법제정
1962년12월28일 호남 비료 나주 공장 준공
1963년01월01일 교육자치제 실시
1963년01월10일 외자도입 강력추진
1963년01월18일 원호센터 준공
1963년01월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3년02월01일 장충체육관 건립
1963년02월04일 지방문화재육성
1963년03월15일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1963년03월21일 감사원 개원
1963년03월30일 원자로 가동식
1963년04월02일 무제한송전실시
1963년04월10일 부녀회관 건립 기공
1963년05월14일 남대문중수공사 준공
1963년07월20일 제대군인 개간농장 입주
1963년08월08일 한국나이론 공장 건설(대구)
1963년08월08일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1963년09월01일 철도청 발족
1963년09월01일 노동청 발족
1963년09월06일 국토종합개발계획조사착수
1963년09월06일 동대문 개축준공
1963년0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
1963년09월17일 가족계획사업추진
1963년09월25일 직업재활원 개원
1963년09월26일 PVC 제조공장 기공
1963년10월10일 가정법원 개원
1963년12월22일 서독광부·간호원파견(1963.12.22~1966.1.30)
1964년01월01일 미터제 실시
1964년05월07일 울산 정유공장 건설
1964년05월07일 국립 중앙 의료원 설립
1964년07월01일 경주석굴암복원준공
1964년08월20일 감천화력발전소건설(부산)
1964년11월29일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1964년12월05일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년 10억불/77년 100억불/82년 200억불/85년 300억불/88년 500억불 달
1964년12월06일 서독방문(유럽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1965년01월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년02월24일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1965년03월19일 방공 포병대대 창설
1965년03월23일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 대회
1965년04월01일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1965년06월01일 김해간척공사 기공
1965년06월22일 한일협정 정식조인(동경), 8월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1965년08월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년09월15일 제2 영월 화력발전소 준공
1965년10월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
1965년11월13일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1965년11월23일 민방위법 제정(민방위대창설:1975.9.22)
1965년12월02일 식량증산 5개년계획 확정
1965년12월03일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1965년12월07일 진삼선 개통(사천~삼천포)
1965년12월16일 국내(텔레스)개통
1966년01월19일 정선선 개통(예미, 증산, 고한 간)
1966년01월27일 경북선 개통(점촌~예천 간)
1966년01월27일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1966년02월04일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발족
1966년03월03일 국세청 발족
1966년03월03일 수산청 발족
1966년04월09일 인천제철공장 기공
1966년04월29일 경인공업단지 건설
1966년05월03일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1966년06월08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1966년06월09일 팔당수력발전소 기공
1966년06월22일 한군군장비현대화계획발표
1966년08월03일 산림청 신설
1966년11월09일 김삼선 기공
1966년11월09일 충남선 기공
1966년11월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년11월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년11월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년12월0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년12월17일 아시아 개발은행 건설
1966년12월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년01월24일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1967년02월10일 대도시 그린벨트설정(서울, 부산 등)
1967년03월04일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1967년03월30일 원자력청 발족
1967년03월30일 과학기술처 신설
1967년04월01일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1967년04월13일 서해안 철도건설
1967년04월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년04월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년04월29일 천체과학관 준공
1967년05월01일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1967년09월19일 구미전자공업단지건설
1967년09월23일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건설
1967년10월0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1967년10월03일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기공(1973. 7. 3 완공)
1967년11월23일 한국수자원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01일 농어촌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20일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1968년00월 0일 포항항 건설(~1973)
1968년01월22일 대간첩작전본부발족
1968년02월07일 경전선개통
1968년02월11일 병기공장(M16소총)건설착수
1968년03월22일 석유화학계열공업 기공
1968년04월01일 예비군 창설
1968년04월13일 서울대학교 이전 건설
1968년06월13일 「레이다」기지 준공
1968년07월05일 방위산업육성3개년계획확정
1968년07월22일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1968년07월23일 동해안공업도시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1968년07월24일 해양주권선언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1968년07월29일 축산개발 4개년계획 확정
1968년08월30일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건설
1968년09월09일 제1회 한국 무역 박람회
1968년02월01일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간)기공식
1968년11월01일 제주도 포도당공장준공
1968년11월08일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준공
1968년12월0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년12월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12월07일 지리산 등 9개지역국립공원지정
1968년12월11일 광화문복원
1968년12월16일 한국 투자개발공사 설립
1968년12월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준공
1969년00월00일 교육제도개혁(중학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1969년02월05일 농업진흥공사 발족
1969년02월15일 지하수개발공사발족
1969년02월15일 한국도로공사발족
1969년02월22일 농업기계화 8개년계획확정
1969년03월01일 국토통일원 개원
1969년03월0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년04월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년04월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69년06월04일 부산 화력발전소 준공(21만Kw)
1969년06월17일 마산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조성
1969년07월03일 울산 알미늄 공장준공
1969년07월29일 서울신도시건설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1969년08월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69년10월07일 남강「댐」준공
1969년11월01일 농어촌근대화촉진법발표
1969년11월29일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69년12월26일 제3한강대교 건설
1970년02월29일 금산사대적광릉 해체 복원
1970년03월07일 비적성공산권에 문호개방
1970년03월22일 정부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마련-86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의무교육9년으로로연장,교육제신설,교원에게병역
1970년04월15일 남해고속도로기공(~1973.11.14)
1970년04월22일 새마을운동 제창
1970년05월16일 서울대교 건설
1970년05월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0년06월02일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년07월01일 우편번호제 실시
1970년07월04일 배창 방직 기계 준공식 참석(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1970년07월05일 직기 공장 준공-유사시엔 총포 생산도
1970년07월07일 경부고속도로 전면 개통
1970년07월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1970년08월02일 낙동, 영산강 종합개발안 영구수해방지 위해 다목적댐 건설 수운 개설
1970년08월15일 8.15기념식에서 북한이 무력포기하면 남북간의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 선언
1970년09월16일 공군 전천후 해상소형공격기 S2A배치
1970년10월22일 수도권(경인,경수,경원)고속전철화(~1974.8.15)
1970년11월10일 행주산성 복원 준공
1970년11월19일 세종대왕기념관 준공
1970년12월08일 도산 서원 보수 정화 공사 준공
1970년12월17일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 확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1970년12월25일 화엄사 대웅전 보수
1970년12월31일 남원 광한루 보수
1971년01월31일 제주도 일주 도로 준공
1971년03월19일 원자력발전소 기공
1971년03월23일 금강·평택 지구 다목적 농업 개발 사업 기공
1971년04월08일 거제대교 건설
1971년04월12일 서울 지하철 기공
1971년04월13일 칠백의총 보수 정화 준공
1971년06월12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제의, 북한측 거부
1971년08월12일 한국적십자연맹, 남북가족찾기회담을 북측에 제의
1971년08월30일 속리산 법주사의 사천왕문 복원
1971년09월08일 국토종합개발계획 확정
1971년09월10일 서울 북악 터널 개통
1971년09월25일 태릉 국제사격장 준공
1971년09월29일 여의도 5·16광장 준공
1971년11월14일 각종 무기 생산 개시
1972년01월04일 전국 10대 관광권 개발 확정
1972년01월05일 군산항 개발 착수
1972년00월00일 제주관광개발사업추진(~1977년)
1972년02월09일 녹색혁명추진(통일벼 개발)
1972년03월10일 경주 고도개발 10개년획확정
1972년03월23일 현대 울산 조선소 기공
1972년04월05일 산림보호, 육성, 산지개발(입산,수렵금지)
1970년05월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2년04월21일 새마을 운동 노래 작사, 작곡
1972년06월07일 교육용 한자1,781자 선정 발표
1972년06월26일 전국702개섬 개발계획확정
1972년07월04일 한국 개발연구원 설립
1972년07월04일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1972년09월30일 영동화력발전소 건설
1972년10월31일 석유화학공장 합동 준공, 울산 석유화학8개공장 건설
1972년11월04일 육산리 고분군 정화
1972년11월13일 시외전화 자동화
1972년11월24일 부산항 대단위종합개발 추진(~1978.9.29)
1972년11월25일 소양강 다목적댐 담수
1972년12월11일 지리산,설악산,낙동강 하류철새보호지역 지정
1973년00월00일 이리 수출 자유 지역
1973년01월12일 공업진흥청 신설
1973년02월16일 제주도 종합개발 착수
1973년03월03일 한국방송공사 설립
1973년05월04일 8개 공업장려지구지정 공업개발(춘천,청주,원주,대전, 전주, 이리, 목포, 군산)
1973년05월05일 어린이대공원 개원
1973년05월11일 해운항만청 신설
1973년05월24일 중화학공업건설발표
1973년06월20일 중앙선(청량리-제천)전철 개통
1973년06월22일 남해대교 건설
1973년06월23일 평화통일외교정책 7개항 발표(6.23선언)
1973년06월26일 대덕연구단지 건설(10개연구소)
1973년07월03일 포항 종합 제철 준공
1973년07월05일 한일대륙붕 협상 완전 타결
1973년07월10일 전국91개 공업고등학교 신설, 확충계획발표
1973년07월20일 여천 석유화학 공업단지 건설
1973년08월15일 남북 UN 동시가입촉구
1973년10월11일 옥포 조선소 기공
1973년10월17일 국립극장 개관
1973년07월18일 정수직업훈련원 개관
1973년10월19일 문예중흥5개년계획추진
1973년06월06일 창원 기계 공업단지 조성
1973년11월07일 국민연금복지법 제정
1973년11월10일 죽도조선소 건설
1973년12월15일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 발표
1974년01월18일 남북한 불가침 협정체결 제의
1974년01월24일 최대임해공업벨트개발(제2제철-조력발전소 건설)
1974년03월28일 영동.동해고속도로기공
1974년05월22일 아산·남양방조제 준공
1974년06월10일 낙성대 정화 사업 준공
1974년01월18일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제의
1974년12월10일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
1974년12월27일 이경관문 해체 복원
1975년01월10일 구미대교 건설
1975년01월21일 농어촌지역의 상수도 시설5개년계획추진
1975년02월01일 대단위농업개발사업추진(금강,평택,광주, 삽교천,계화도)
1975년03월27일 대청 다목적댐 건설
1975년04월11일 중앙민속박물관 개관
1975년05월20일 학도호국단 창설
1975년09월01일 국회의사당 준공
1975년10월10일 서울 어린이회관 이전 개관
1975년10월28일 전국 성곽 보수 사업 추진
1975년10월30일 정립회관 건립(장애인보호육성)
1975년11월07일 함대함 미사일 개발
1976년01월20일 옥산서원보수
1976년01월20일 강화 지역 유적 개발
1976년01월20일 신안 해저 문화재 발굴
1976년03월17일 모산 저마 공장 준공-충남 아산군 배방면 공순리
1976년04월10일 밀양 포충사 정화사업
1976년04월10일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1976년04월17일 국어 정화, 순화 운동 전개
1976년05월10일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1976년05월18일 한국 인력 검정공단 법안 확정(기술인력관리,자격,검정의 일원화)
1976년06월24일 유적지전적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제정
1976년06월24일 구마고속도로 착공
1976년07월16일 잠수교 개통식 참석
1976년10월02일 반월공업도시 건설
1976년10월12일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
1976년10월14일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 제1단계사업준공
1976년10월30일 한산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 참석
1977년01월12일 대북식량원조 제의,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힘
1977년01월28일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음을 천명
1977년00월00일 남서울대공원 건설
1977년02월15일 산업체부설학교 및 특별학급설치
1977년02월17일 증권감독원 개원
1977년00월00일 전국 도서관 확충
1977년04월30일 초고압송변전시설 완공
1977년05월25일 미군철수 정책 저지(선보완, 후저지)
1977년06월15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설(1977.6.15 ~1982.3.10)
1978년07월01일 부가가치세, 의료보험 실시
1977년07월10일 자동차공업 육성책 발표
1977년07월30일 경주통일전조성
1976년11월03일 안동 다목적댐 건설
1977년09월22일 소비자보호기본법제정
1977년10월07일 육림의 날 선포
1977년10월09일 여주 영육 성역화 사업
1977년10월09일 부석사 정화 작업(1977~1979)
1977년10월25일 군산화력발전소
1977년10월25일 부평화력발전소
1977년11월04일 아산화력발전소건설
1977년12월07일 전주권 광역도시개발 및 공업단지 조성
1977년12월22일 1백억불 수출달성 기념
1978년01월01일 동력자원부 신설
1978년01월09일 충주 다목적댐 건설
1978년01월18일 군수산업의 육성(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
1978년02월20일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확정
1978년03월30일 호남선 복선 개통
1978년04월01일 국민체조보급
1978년0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1978년05월03일 월정사복원
1978년05월10일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광주)
1978년05월10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충주)
1978년05월22일 부마고속도로건설(1978.5.22 ~ 1980.10.5)
1978년06월05일 태양에너지 연구소 발족
1978년06월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8년06월23일 남북간의 교역, 기술, 자본 협력 위한 민간 경협기구 구성을 북한에 제의
1978년06월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1978년08월15일 해남 표충사 보수
1978년09월26일 국산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중거리 유도탄, 다연발 로케트, 대전차 로케트 시험발사에 성공, 세계 7번쨰 개발 보유국됨.
1978년10월0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1978년10월20일 서해안 일부지역 국립 해안 공원 지정
1978년10월30일 직지사 정화사업
1978년11월08일 관광산업진흥책 발표
1978년12월22일 곽재우장군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1978년12월06일 광주박물관 개관
1978년12월30일 장거리 자동 공중전화 시대 개막
1979년03월27일 토지개발공사 설립
1979년04월06일 경주 보문 관광단지 개장
1979년04월18일 잠실체육관 건립
1979년05월30일 상주 정기룡장군 유적지 정화 사업
1979년06월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9년06월13일 수도권 광역수도사업 추진(팔당)
1979년07월05일 천호대로 준공
1979년10월02일 환경청 신설
1979년10월12일 국제 올림픽대회 서울 유치 언명
1979년10월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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