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cGMPtM/btrLcITrUSF/kwXhUd6KFNiCWqMQFUrAvk/img.gif)
교통기관의 혁신
과학기술 발전의 발자취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이를 이용하여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이 만들어지지 전까지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와 마차, 그리고 배가 사람이 만든 교통기관의 주가 되어왔다. 그러나 증기기관을 교통기관의 동력원으로 사용함으로써 획기적인 교통 혁신이 일어났다. 어떤 면에서는 교통기관의 혁신이 증기기관이 가져온 가장 큰 혁신 중의 한 가지로 볼 수 있다.
기원전 4000~3500년 전에 바빌로니아와 중국에서 수레바퀴가 발명되었는데, 이를 이용한 수레나 마차가 사람이 만든 첫 번째 교통기관이다. 비슷한 시기에 배가 발명되어 수상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배는 초기에는 노를 사용하는 것이었으나, 돛을 단 배도 발명되었다. 여러 개의 돛을 단 배는 대형화되어, 한 번에 많은 사람과 물건을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배를 이용한 수상교통은 별도의 길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육로 교통보다는 보다 빠르게 발전하였다. 중세 이후 지역 간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 하천만으로는 운송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고, 따라서 많은 인공 운하가 만들어져 내륙수송망이 넓혀지게 되었다.
철도 교통기관
영국 탄광에서는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마차 궤도를 사용하였다.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이를 사용하여 궤도 위를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기관차를 만들려는 시도가 영국과 미국에서 행해졌다. 1784년에 영국의 발명가 트레비식은 궤도 위를 증기기관을 달고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기관차를 처음으로 제작하였으며, 매끄러운 금속 궤도와 바퀴가 기차를 끌 수 있는 충분한 마찰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발명들은 대부분 독창적이고 타당한 것이었으나, 그의 증기기관차는 여객 교통수단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최초의 실질적 여객 철도 운행은 1825년에 영국의 스티븐슨에 의해 에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때의 속도는 시속 20~26km이었는데, 최초로 달리는 말보다 빨리 육상을 이동하게 된 것이다. 1830년에는 8개의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리버풀-맨체스터 간의 철도가 완성되었으며, 이후 본격적인 철도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836년에는 런던에 철도회사가 설립되는 등 영국 전역에 철도교통이 확산되었다. 증기기관차를 이용한 철도교통은 곧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1827년에, 독일에서는 1835년에 철도 운행이 시작되었다.
이미지 갤러리 가기
초기 증기기관차 산스 파렐(Sans Pareil)의 복제품
사진은 1829년에 세인트 헬렌스(St. Helens)에서 열린 증기기관차 경연대회인 레인힐 대회(Rainhill Trials)를 1980년에 재연한 장면
1841년에는 국제철도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와 스위스의 바젤 간에 최초로 개통되었다. 미국에서는 1827년에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회사가 최초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미국 철도망은 급격히 확장되어 1840년경 4,500km에 불과하였던 것이 1860년경에는 5만 km나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 9월 18일에 노량진-제물포 간의 33.2km의 철도가 처음 개통된 후, 1905년에 경부선, 1906년에 경의선, 1914년에 호남선과 경원선이 차례로 개통되어 본격적인 철도교통 시대를 맞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91년에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9,313km의 시베리아횡단 철도가 기공되었고, 캐나다에서도 1885~1915년 사이에 3개의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되었다.
철도망의 확대는 교량과 터널 굴착기술의 큰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철도 운행에 필요한 자동신호기술과 공기 제동장치의 기술 발전을 가져왔다. 철도 가설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는데, 지방에서 또는 미국에서처럼 외국(주로 중국)에서 유입된 노동력은 철도 공사가 끝난 후에도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증대된 도로 건설과 공장에 필요한 노동 인력의 수요를 충당하게 되었다.
증기기관차는 각종 성능 개선으로 보다 강력한 출력을 내게 되어, 속도가 빨라지고 또 길게 되면서 산업화에 따른 증가된 여객 및 화물 수송 수요를 충당해나갔다. 그러나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관계로, 매연이 심하고 무게 대비 출력이 작은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1930년에 등장한 디젤기관차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증기기관차를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증기기관차는 철도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디젤기관차는 다시 전기기관차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해상 교통기관
종래의 돛을 단 범선이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증기선으로 대체되는 등 증기기관은 해상교통의 일대 변혁도 가져왔다. 1800년대 초반에는 여러 증기선들이 제작되었는데, 증기기관의 출력이 충분히 크지 않고, 또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무거운 기관과 많은 양의 석탄을 실어야 하는 한계 때문에, 돛과 증기기관을 모두 사용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증기선이 주로 운행되었다.
계속적인 증기선의 개선 결과, 1884년에는 크기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열효율이 높은 장점을 갖는 증기터빈의 원리가 개발되었고, 이후 증기터빈을 배의 추진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증기선의 운행 증가로, 운하 건설사업이 확대되었으며,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1914년에 파나마 운하가 완공되었고, 미국에서는 미시시피강과 5대호를 연결하는 운하건설이 시작되었다. 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증기선도 디젤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1912년에 최초로 디젤 추진력을 가진 배가 진수되었다. 1958년에는 원자력을 이용한 배가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나, 비용이 아주 많이 들기 때문에 민간용으로는 사용되지 않고, 일부 국가에서 군함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동차
말이 마차를 끄는 대신에,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1769년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증기기관은 실린더 밖에서 연료(주로 석탄)를 태워 나오는 열로 피스톤을 움직이게 하는 외연기관(external combustion engine)이다. 여러 발명가들은 실린더 내에서 연료를 태우고 이때 나오는 열과 기체 팽창으로 피스톤을 직접 움직이게 하는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이 보다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이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적절한 액체 연료가 없어, 초기에는 기체 연료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미지 갤러리 가기
1885년에 제작된 벤츠의 자동차
내연 기관을 달고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이다.
1806년에 스위스에서 수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제작되었고, 이후 1880년 중반까지 수소나 가스등에 사용하는 석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가솔린을 사용하면서 전기 점화장치를 갖춘 오늘날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1885년에 독일의 벤츠가 발명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벤츠의 자동차는 1888년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처음 생산되었다. 1900년경에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대형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자동차에 사용되는 디젤 엔진은 1897년에 루돌프 디젤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디젤 엔진은 연료와 공기 혼합물을 압축할 때 나오는 열로 점화되므로 점화장치가 필요 없으며, 가솔린보다는 끓는점이 높은 값싼 연료를 사용하고 안전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에는 증기자동차, 전기자동차, 그리고 내연기관 자동차가 경쟁을 하였으나, 1910년경부터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자동차는 여러 세부적인 개량과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자동차는 석유자원의 고갈과 유가 상승, 공해 유발 등의 이유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고,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의 한 가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용량이 큰 2차 전지(축전지)를 장착하여, 자동차 엔진이 내는 출력이 필요한 에너지보다 클 때는 나머지를 전기로 전환시켜 저장하였다가, 가속할 때처럼 큰 에너지가 필요할 때 이 저장된 전기 에너지를 엔진 출력에너지에 합쳐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게 설계된 자동차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이다.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자동차가 개발되기 전인 1830~1840년대에 1차 전지를 사용한 것이 개발되었으나,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자동차의 배출가스 오염에 대한 우려와 대체에너지 사용의 필요성 때문에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유가, 원자력에 의한 전력 생산의 증가, 고성능 축전지의 개발 등이 전기자동차의 실용화에 대한 필요성과 경제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전기자동차의 다른 형태로 연료전지 자동차가 있는데, 이는 연료를 연소(산화)시킬 때 나오는 열에너지 대신, 연료의 연소를 전기화학적으로 일어나게 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이다. 이 경우 이론적으로 연료의 에너지 효율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는 월등히 높고, 배출가스에 의한 환경오염이 거의 없는 장점을 갖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효율적인 연료전지 개발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수소자동차는 초기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수소를 연소시켰던 것과는 달리,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수소 생산에는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아마도 원자력 발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이용하여 물을 전기분해 시켜 수소를 얻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항공기
인간은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자신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어왔다. 15세기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새가 나는 것을 연구하고, 새와 닮은 모형의 비행기를 설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비행한 것은 1783년 11월에 몽골피에르 형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을 비롯한 30만 군중 앞에서 기구(balloon)를 타고 10km를 비행한 것이 처음이었다. 기구 제작자들은 단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가 아닌, 조정이 가능한 기구를 만들려고 하였으며, 마침내 동력을 이용하여 프로펠러를 돌림으로써 조정이 가능한 비행선들이 제작되었다. 기구와 비행선의 발명은 대기 상층의 연구와 지도 제작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기구나 비행선은 수소와 같은 가벼운 기체를 안에 넣어 공중에 뜨게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으나, 일부는 새처럼 공기보다 무거운 것이, 새와는 다르게 고정 날개를 갖고 하늘을 날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발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높은 언덕에서 활공하는 글라이더가 제작되었고, 이를 이용한 활공비행에 많은 관심이 주어지면서 비행기의 기본 구조와 공기 역학에 관련된 기초가 마련되었다.
자전거와 글라이더 타기를 즐기고, 자전거를 손수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는 이들 두 가지를 결합하여 최초의 비행기를 제작하였다. 그들은 1903년 12월 17일에 최초로 동력을 사용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를 타고 나는 데 성공하였다. 이날 동생 오빌 라이트는 약 1분 동안 공중에 떠서 약 250m의 거리를, 활공이 아니고, 비행하였다. 이때 관중이 단지 5명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작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05년에는 반시간 동안 24마일(약 38km)를 비행하였고, 1908년에는 1시간 비행하였다. 1909년에는 영국해협 횡단 비행이 성공하였는데, 이로써 비행기는 많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시에는 비행기들의 공중전이 펼쳐졌고, 다양한 실용 항공기의 개발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무착륙 비행은 1927년에 린더버그에 의해 이루어졌다. 린더버그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하고, 1922년에 비행 학교를 다녔으며, 1925년에 자신의 비행기를 구입하고 항공우편물 비행기의 조종사가 되었다. 당시에 최초로 대서양 횡단 무착륙 비행을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거금 25,000$의 현상금을 주기로 했었는데, 그가 1927년에 뉴욕-파리 비행을 33시간 30분에 완수하여 현상금을 받았다. 1930년대 초에는 자가용 비행기가 점차 증가했지만, 안전성이나 경제성의 문제로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항공기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특히 제트-추진 항공기가 1939년에 등장하여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57년에는 제트-추진 여객기가 제작되었으며, 이로써 먼 거리를 보다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전자장치를 이용한 항법이 개발되어 비행의 안전성이 높아짐으로써 본격적인 항공여행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하늘을 나는 시대에서 우주로 여행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강력한 로켓의 개발로 물체를 지구의 중력권 밖인 우주로도 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1957년에 (구)소련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 위에 올리는 데 성공한 이후, 1961년에는 유인 우주비행이 성공하였고, 1968년에는 달까지의 우주여행도 성공하게 되었다. 장기간의 우주 체류를 위한 여러 실험도 성공을 거두었는데, 1967년에는 우주 공간에서 두 우주선이 결합하는 도킹(docking)이 성공하였으며, 이후 우주 정거장을 우주 공간으로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우주왕복선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기술적 성공들은 단순히 사람들을 보다 더 멀리 우주로 여행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용과 탐구영역을 우주 공간까지 확대시킬 수 있게 하였다. 2009년까지 수천 개의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에 올려졌으며, 이중 수백 개는 현재에도 작동하고 있다. 이들은 군사, 통신, 지구 관측, 기후, 그리고 대기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우주를 관측하는 등의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 또 행성으로 우주 탐사선을 직접 보내 각종 과학적 자료를 얻고 있기도 하다.
출처
© NAVER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