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빌려온 좋은글

비목의 사연

돌 박사 2021. 6. 26. 06:45

?비목. 그 숨은 이야기?
♦️40년 전 막사 주변의
빈터에 호박이나 야채를
심을 양으로 조금만 삽질을
하면 여기 저기서 뼈가 나
오고 해골이 나왔으며 땔감
위해서 톱질을 하면 간간히
톱날이 망가지며 파편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순찰
삼아 돌아보는 계곡이며
능선에는 군데군데 썩어
빠진 화이버며 탄띠 조각이
며 녹 슬은 철모 등이 나
딩굴고 있었다.
♦️실로 몇 개 사단의
하고 많은 젊음이 죽어갔다
는 기막힌 전투의 현장을
똑똑히 목도한 셈이었다.
♦️그후 어느날 나는 그
격전의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생생
한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
왔다. 그러고는 깨끗이 손질
하여 옆에 두곤 곧잘 그
주인공에 대해서 가없은
공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쟁 당시 M1 소총이
아닌 카빈의 주인공이면
물론 소대장의 계급은 소위
렸다. 그렇다면 영락 없이
나같은 20대 한창 나이의
초급장교로 산화한 것이다.
♦️일체가 뜬 구름이요,
일체가 무상이다. 처음 비목
을 발표할 때는 가사의
생경성과 그 사춘기적 무드
의 치기가 부끄러워서 한일
무라는 가명을 썼었는데
여기 一無라는 이름은 바로
이때 응결 된 심상이었다.
♦️이렇게 왕년 격전지에서
젊은 비애를 앓아가던 어느
날, 초가을의 따스한 석양이
산록의 빨간 단풍의 물결에
부서지고 찌르르르 산간의
정적이 고막에 환청을 일으
키던 어느 한적한 해질녘,
나는 어느 잡초 우거진 산
모퉁이를 돌아 양지바른 산
모퉁이를 지나며 문득 흙에
깔린 돌무더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필경 사람의 손길이 간
듯한 흔적으로 보나 푸르칙
칙한 이끼로 세월의 녹이
쌓이고 팻말인 듯 나 딩구
는 썩은 나무등걸 등으로
보아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결코
절로 쌓인 돌이 아니라
뜨거운 전우애가 감싸준
무명용사의 유택이었음에
틀림 없다. 어쩌면 그 카빈
총의 주인공 자랑스런 육군
소위의 계급장이 번쩍이던
그 꿈 많던 젊은 장교의
마지막 증언장이었음에 틀림
없다.
♦️이제 이야기가 여기쯤
다다르고 그때 그 시절의
비장했던 정감이 이쯤 설명
되고 보면 비목 같은 간단한
노래가사 하나쯤은 절로 엮어
질 수밖에 없었다는 감성적
개연성을 십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정이 남달라서도 아니요,
오직 순수하고 티없는 정서의
소유자였다면 누구나 그같은
가사 하나쯤은 절로 빚어내고
절로 읊어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 그때 그곳의 숨김 없는
정황이었다.
♦️그후 세월의 밀물은 2년
가까이 정들었던 그 능선 그
계곡에서 나를 밀어내고 속절
없이 도회적인 세속에 부평초
처럼 표류하게 했지만 나의
뇌리, 나의 정서의 텃밭에는
늘 그곳의 정감, 그곳의 환영
이 걷힐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TBC 음악부
PD로 근무하면서 우리 가곡
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쏟던
분의 시절 그때 나는 방송일로
자주 만나는 작곡가 장일남으
로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
몇 편을 의뢰받았다.
♦️바로 그때 제일 먼저 내
머리 속에 스치고 간 영상이
다름 아닌 그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하얀 산목련이었다.
♦️나는 이내 화약냄새가
쓸고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의
이름모를 돌무덤을 포연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그리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그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 따라
순절한 연인으로 상정하고
사실적인 어휘들을 문맥대로
엮어갔다.
♦️당시의 단편적인 정감들을
내 본연의 감수성으로 꿰어
보는 작업이기에 아주 수월
하게 엮어갔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
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이렇게 해서 비목은 탄생
되고 널리 회자 되기에 이르
렀다. 오묘한 조화인양 유독
그곳 격전지에 널리 자생하여
고적한 무덤가를 지켜주던 그
소복한 연인 산목련의 사연은
잊혀진 채 용사의 무덤을 그려
본 비목만은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한 셈이며 지금도 꾸준
히 불려지고 있다.
♦️비목에 얽힌 일화도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가사의 첫 단어
인 '초연'은 화약연기를 뜻하는
초연(硝煙)인데, 초연하다 즉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오불관언
의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때는 비목(碑木)이란
말 자체가 사전에 없는 말이고
해서 패목(牌木)의 잘못일 것
이라는 어느 국어학자의 토막
글도 있었고, 비목을 노래하던
원로급 소프라노가 궁노루산
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도 한
일이 있었다. 궁노루에 대해
서 언급하면 비무장지대 인근
은 그야말로 날짐승 길짐승의
낙원이다.
♦️한번은 대원들과 함께
순찰 길에서 궁노루 즉, 사향
노루를 한 마리 잡아왔다.정말
향기가 대단하여 새끼 염소만
한 궁노루 한 마리를 잡았는데
온통 내무반 전체가 향기로
진동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그 날부터 홀로
남은 짝인 암놈이 매일 밤을
울어대는 것이었다.
♦️덩치나 좀 큰 짐승이 울면
또 모르되 이것은 꼭 발바리
애완용 같은 가녀로운 체구에
목멘 듯 캥캥거리며 그토록
애타게 울어대니 정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
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수정처럼 맑은 산간
계곡에 소복한 내 누님 같은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
이면 그놈도 울고 나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이란 가사의 뒤안
길에는 이같은 단장의 비감이
서려 있는 것이다.
♦️6월이면 반도의 산하는
비목의 물결로 여울질 것이다.
그러나 우직한 촌놈기질에 휴가
나와 명동을 걸어보며 눈물짓던
그 턱없는 순수함을 모르는 영악
한 이웃, 숱한 젊음의 희생 위에
호사를 누리면서 순전히 자기
탓으로 돌려대는 한심스런 이웃
양반,
♦️이들의 입장에서는 비목을
부르지 말아다오. 시퍼런 비수는
커녕 어이 없는 우격다짐 말 한
마디에도 소신마저 못펴 보는
무기력한 인텔리겐차,
♦️말로만 정의, 양심, 법을 되
뇌이는 가증스런 말팔이꾼들,
더더욱 그같은 입장에서는 비목
을 부르지 말아다오.
♦️풀벌레 울어 예는 외로운
골짜기 이름 없는 비목의 서러
움을 모르는 사람, 고향 땅 파도
소리가 서러워 차라리 산화한
낭군의 무덤가에 외로운 망부석
이 된 백목련의 통한을 외면
하는 사람,
♦️짙푸른 6월 산하에 비통이
흐르고 아직도 전장의 폐허 속
젊음을 불사른 한 많은 백골들이
긴 밤을 오열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호국영령을 외쳐대면
서도 속으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가련한 사람, 아니 국립
묘지의 묘비를 얼싸안고 통곡
하는 혈육의 정을 모르는 비정한
사람, 숱한 전장의 고혼들이 지켜
낸 착하디 착한 이웃들을 사복
처럼 학대하는 모질디 모진 사람,
♦️숱한 젊음의 희생 아닌 것이
없는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 위에
살면서도 아직껏 호국의 영령 앞
에 민주요, 정의요, 평화의 깃발
한번 바쳐보지 못한 저주 받을
못난 이웃들이여,
♦️제발 그대만은 비목 부르지
말아다오. 죽은 놈만 억울하다고
포연에 휩싸여간 젊은 영령들이
진노하기 전에!
ㅡ 작사가 한명희(韓明熙)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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