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

<동화> 도깨비 마을

돌 박사 2020. 3. 13. 20:56


도깨비 마을 이야기

   

  1. 이야기 실마리                                              

   내 이름은 창민이고요, 나이는 일곱 살이랍니다. 우리 집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 누나와 누이동생까지 일곱 식구가 함께 살고 있지요. 그리고 이웃 마을에 사는 멋진 삼촌이 가끔 우리 집에 오신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삼촌이 제일 좋아요. 못하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늠름한 청년이거든요. 또 하나밖에 없는 단짝친구 웅이도 있어요.

해마다 봄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유난히 많이 찾아오는 제비마을이기도 하지요. 우리 동네에 연씨네가 많이 살기 때문이라고 해요. 흥부와 놀부의 성이 연 씨였다고 하잖아요.

제비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을 고쳐준 흥부에게는 박씨를 물어다주어 부자를 만들어주었고,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고쳐준 놀부에게는 벌을 주었다는 옛날이야기를 제비들도 아는가 봅니다.

우리 고장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재미있는 전설이 유난히 많답니다. 그 중에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사람들 이야기를 비롯하여 [벼락바위],[까막쭉배기],[도깨비터],[피리골],[고든골],[자작고개 이야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답니다.

 

오늘 아침 하늘은 어머니가 빨래할 때 쓰려고 태워 만든 메밀짚 재의 색깔과 꼭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빨래를 할 때마다 메밀짚 잿물을 쓰시거든요. 잿물을 우려내고 난 재는 밭에 거름으로 뿌렸는데 그 색깔이 꼭 지금 하늘에 떠있는 구름의 색깔이거든요. 그런 잿빛하늘이 저만치 보이는 벼락구비산 까막쭉배기 봉우리까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이럴 때 삼촌은 하늘을 처다 보면서비가 곧 오려나보다.’하고 마치 예언자 같이 말했지요.

그러면 얼마 후 영락없이 앵두알만 한 빗방울이 소리치며 쏟아졌어요. 지금 하늘빛이 꼭 그 짝입니다.

아침에는 먹기 싫은 보릿겨죽을 끼적거리다가 아버지께 야단을 맞았으니 지금 기분이 잔뜩 찌푸린 하늘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놈이 배가 부른 모양이구나, 먹기 싫으면 그만두어라. 음식은 뭐든지 고맙게 생각하고 맛있게 먹 어야 복이 들어오는 법이다. 그렇게 먹는 음식을 끼적거리면 있던 복도 다 달아나 비렁뱅이가 되는 게야.”

아직도 아버지의 싸늘한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조반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어머니와 형까지 앞세우고 널나들이로 밭일을 나가셨습니다.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혼자 남아 우두커니 빈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득 친구 웅이가 생각났어요. 웅이네 집은 용호터 도깨비 집 근처에 있습니다.

훔쳐갈 것도 없는 빈 집을 지키면 뭘 해.’웅이네 집에 가면 감자도 있고, 옥수수도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도깨비가 산다는 후미진 산자락 외딴집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도깨비는 닭이 울고 날이 밝으면 숨어버린다고 하니 겁날 게 없습니다. 무서울 때는 일부러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될 테니까요.

동갑내기 웅이는 별명이 코훌쩍이랍니다. 늘 흐르는 콧물을 잽싸게 훔치는 습관이 있거든요. 코가 나오기만 하면 훌쩍 소리를 내며 옷소매로 쓱 닦아 옷소매는 반들반들하답니다. 코를 훔쳐내는 동작은 또 얼마나 빠른데요? 정말로 번개 같거든요.

웅이야~ ”

내가 부르는 소리에 방문을 열면서도 제일먼저 한 행동이 번개처럼 콧물을 훔치는 거예요.

, 창민이 왔어?”

너랑 물고기잡기 하려고

비가 올 거 같은데

웅이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어른스럽게 말합니다. 그럴 땐 꼭 삼촌 흉내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비 쏟아지면 뛰어 들어오면 되지.”

알았어. 가자.”

웅이는 마지못해서 끌려가는 송아지같이 답답하게도 꾸물거립니다. 웅이네 집은 바로 냇가에 있고 웅이 아버지는 틈만 나면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물고기를 잡아 천렵을 하기 때문에 고기 잡는 삼태기며 강철로 만든 작살, 고기 담는 종도리가 헛간에 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웅이와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같이 작살을 꼬나들고 삼태기는 방패같이 뒷머리에 뒤집어쓰고 종도리를 휘두르면서 벼락구비 냇가로 갑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구메바위인데 옛날에 하늘에서 천둥벼락을 쳤다고 해서 벼락바위라고도 하지요.

 

2. 벼락바위 전설

     아주 오래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이 구메바위 산위에는 저녁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포효하며 마을을 지켜주었다고 하여 용호대라하고 합니다.

  구메바위는 바로 용호대 벼랑길에 있습니다. 전에는 이 바위에 큰 굴이 있어서 구멍바위라는 뜻으로 부르던 이름입니다.

  바닥에서 한 자 높이에 넓은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 안에 들어가면 자리 한 장을 펴놓을 정도로 넓은 반석 방이 있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마을 사람들이 숨어서 피난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바위굴속에서 수백 년 묵은 구렁이가 용이 되어 강을 따라 서석 용두안에서 승천하였다고 해서 이 마을을 또 용호대라고 합니다. 구메바위는 마치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운 듯 바위기둥이 겹겹이 세워져 있으며 이 벼랑길은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외길이었습니다.

이 구메바위 동굴에 살던 구렁이가 용이 되어 나간 다음에는 커다란 지네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머리는 하나인데 다리가 수없이 달린 괴상한 괴물이었습니다. 이 괴물은 자주 사람을 해치고, 따로는 강가에 매어놓은 소를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는 수 없어 어린처녀를 제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해마다 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걸 안타까워 한 어른들은 마을을 떠나가기도 하고 갈수록 인심도 흉흉해졌습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괴물은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으니, 천신께 제를 올려 괴물을 퇴치하기로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천신께 백일기도를 드렸지요.

마을 사람들은 밤이고 낮이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먹장같이 깜깜해 지고, 이어서 천둥번개가 밤새도록 천지를 뒤흔들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변괴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꼬박 밤을 지새웠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사방은 조용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공포의 구메바위는 산산히 흩어지고 그 위에 산더미 같은 괴물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곳을 벼락바위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의 그 벼락바위 개울에는 물이 깊고 바위가 많아 물고기가 많이 모였습니다. 볕이 쨍쨍한 날에는 솥뚜껑만한 자라도 가끔 바위에 기어 올라와서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는 걸 지나가다 볼 수도 있고요. 팔뚝만한 메기도 웅이 아버지는 작살로 곧잘 잡아냈습니다.

물이 깊어 무섭긴 해도 우리는 가장자리 얕은 곳에서 작은 돌을 흔들어 삼태기로 고기를 떠올렸습니다.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웅이는 고기를 잘 잡습니다. 큰 돌도 잘 들치고 발로 고기를 잘 몰아옵니다. 피라미, 쉬리, 뚝지, 퉁가리가 정신없이 삼태기로 들어옵니다. 가재는 잡혀도 도로 놓아주었습니다. 껍질이 딱딱해서 먹을 것도 별로 없으며 할머니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나절이 되도록 잡은 고기는 종도리에 반이나 찾습니다. 웅이와 나누어 갖자고 했지, 웅이는 안 가져도 좋다고 하여 종도리 채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셨습니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웅이가 건네준 주먹만 한 찐 감자를 두 개나 먹었더니 배가 든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솥에서 끓고 있는 고깃국이 군침을 삼키게 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삼촌 말이 오늘은 틀렸습니다. 비는 한 방울도 안 오고 구름이 걷힌 하늘엔 해가 쨍쨍 났던 하루였습니다.

문득 자취를 감춘 삼촌이 보고 싶어집니다.

 

 

3. 이야기 마을 사람들

   한여름 밤이면 저녁밥을 먹은 동네사람들이 마을의 밤나무 밑에 모였습니다. 할머니나 아버지를 따라서 동네 아이들도 모였습니다.

경식이네 집 앞 커다란 밤나무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이야기마당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세 명이 둘러설 정도로 큰 밤나무 두 그루가 마주서있습니다. 경식이네 할아버지는 해만 지면 이 밤나무 밑에 멍석을 깔아놓는 걸 잊지 않습니다. 그러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지요.

아이들도 한 집에 두 명 꼴은 어른들을 따라와서 어른들 옆에 붙어 앉지요. 주인을 따라온 검둥이, 누렁이, 네눈박이 개들도 천둥에 놀란 것처럼 뛰고 놀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할머니나 어머니, 또는 아버지 옆에 얌전하게 앉아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모처럼 맛보는 주전부리로 심심풀이를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장죽에 담배를 연신 재어 물고, 젊은이들은 가끔씩 밤나무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지 반디불이처럼 반짝입니다.

사람들이 어지간히 모이면 집집마다 준비한 간식들이 바가지나 보자기에 담겨서 나옵니다. 여름철의 간식은 다양해서 굵은 강낭콩을 넣은 밀범벅, 찐 옥수수, 삶은 감자에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까지 등장합니다. 서로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가 무르익어갑니다.

처음에는 날씨이야기로 시작하여 농사이야기, 동네 살림이야기로 이어져 절정은 언제나 아이들이 기다리는 옛날이야기로 꽃이 핍니다.

 

 

4.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아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마음씨 착한 효자가 살았대요.”

경순이 할머니가 이야기 꼭지를 땁니다.

부모님께는 극진히 효도를 다하고, 이웃 어른들을 존경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효자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지 뭐에요. 처음에는 곧 나으려니 가볍게 여기고 있었으나 좀처럼 차도가 없는 거예요. 이곳저곳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써보았지만 병은 낫지 않았대요. 나중에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자리에 눕고 말았지요. 기어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의원을 찾아다녔으나 병은 낫지를 않았어요. 침을 맞고, 약을 써보았지만 들어주지 않았어요. 오랜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어머니는 몸이 거미처럼 마르고, 숨을 몰아쉬며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어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어머니를 굽어보며 아들은 이런 생각을 했대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피를 되돌려 드려야겠다고아들은 손가락을 잘랐대요.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어머니 입에 넣어드린 거예요. 젊은 피의 효험이었을까요, 생기를 잃어가던 어머니가 몸을 움직였어요. 어머니는 감고 있던 눈을 가늘게 떠서 아들을 보았어요. 눈동자에서 빛이 났어요.

어머니, 정신이 드세요?”

그래, 여기가 저승인가 보구나.”

저승은요. 어머니 저예요. 저를 보세요.”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미음을 만들고, 물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씻겨 드렸어요. 차츰 기운을 차리고 음식을 목으로 넘겼습니다.

어머니가 살아나셨어요.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은 효자 아들이 어머니를 살렸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했지요.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 이 효자 이야기에서 유래했다지 뭐예요.

 

옛날 한 마을에 마음씨가 착한 부부가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답니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어받았습니다.

부부가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건강하던 아버지가 병이 들더니 몸이 점점 쇠약해졌지요. 무엇이든지 잘 드시던 음식도 입에 당기지를 않았어요.

아버님이 빨리 나으셔야 하는데, 용한 의원을 찾아가 봐야겠어요.”

글쎄 말이요. 벌써 몇 달째 저렇게 아무 것도 못 드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내일은 이웃 고을의 용하다는 위원을 찾아가 봅시다.”

이렇게 시작한 아버지의 병은 백약이 쓸모가 없었어요.

내 병은 약이 없다. 공연히 헛수고만 하지 말고 너희들 할 일이나 열심히 하거라.”

아버님 그런 말씀 마시고 무엇이든 잡수셔야 합니다.”

내 병은 내가 안다니까. 이제 그만들 두어라.”

날이 가고 해가 가도 병은 차도가 없었습니다. 환자도 지치고 수발하는 식구들도 기운이 빠졌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시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며느리는 항상 옆에 지켜 앉아 온갖 정성을 다해 시아버지를 보살폈지요. 그날도 시아버지 병수발을 하다가 깜빡 졸음이 왔나 봅니다.

에이, 그 병엔 다른 약이 없느니. 어린 아이를 삶아 먹이면 모를까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신령님의 예지몽이라고 믿은 며느리는 남편에게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어찌 아이를 희생시킬 수 있겠소.”

아이는 다시 또 얻을 수 있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시면 그만인 걸 어찌 모르세요.”

그렇기는 하지만

차마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아버님만 나으신다면

시아버지를 끔찍이 모셔온 며느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아이로 시아버지를 구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솥에서 삶아진 것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큰 산삼이 진하게 우러난 산삼탕이었습니다. 그 산삼을 드시고 시아버지는 씻은 듯이 병을 털어내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글쎄요, 사람의 참된 정성을 시험해 본 신의 한 수였을까요. 아니면 이 또한 도깨비의 착한 장난이었을까요.

경순이 할머니와 경식이 할아버지가 번갈아서 이어가는 옛날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를 들은 밤에는 영락없이 도깨비와 씨름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도깨비 방망이에 흠씬 얻어맞기도 하고, 때로는 도깨비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는 행복한 꿈도 꾸었습니다.

또한 뒷간에 나타난다는 뒷간귀신이나 도깨비이야기 때문에 외딴 시골마을은 해만 지면 문밖출입이 두려웠습니다. 경순이 할머니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깨비는 상상만 하여도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해집니다. 이마에 돋은 외뿔, 커다란 외짝 눈을 번쩍이며 방아공이처럼 생긴 방망이를 휘두르는 도깨비가 금방이라도 눈앞을 가로막을 것만 같습니다.

무서운 얘기를 들은 날은 왜 꼭 밤똥이 마려운지 그것도 모를 일입니다.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태운 탓인지도 모르지요.

밤똥이 마려우면 형을 깨워서 동무를 세워야 했지요. 식구들 중에 그래도 만만한 사람이 형이었으니까요.

형도 나랑 똑같이 똥이 마려웠으면 좋으련만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쿨쿨 잠만 잡니다.

형아 ~ 아 나 똥마려워 동무해줘.”

급해진 나는 기어이 형을 흔들어 깨웁니다. 나보다 네 살이나 더 먹은 형은 가끔은 무섭게 나를 혼내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밤똥동무는 해주었습니다.

조그만 녀석이 작작 좀 먹지-”

감자 두 개 옥수수 한 개밖에 뭘…….”

나는 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고무신짝 같이 일그러진 달이 서쪽하늘에 걸려있고 주위에는 별들이 덩어리가 져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귀신을 부르는 것처럼 들려옵니다.

다 눴니?”

형이 밖에서 재촉합니다.

형 가지마. 조금만 기다려.”

형의 재촉을 받으면서 다음부터는 먹는 욕심은 절대 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럴 때 형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나는 정말로 형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마실 가서 뭐든 더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동네사람들이 밤나무 밑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나 아버지도 밖으로 나다니지 않았습니다. 전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일도 없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오면 뚝 그치고 돌아섭니다. 언제부터인지 마을에는 도깨비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삼촌이 안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창마을 마방에 가면 삼촌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곳에 가도 삼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엔 할머니께 궁금증을 털어놓았지요.

할머니 수하 삼촌은 왜 우리 집에 안 와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할머니는 놀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응 어디 멀리 갔다고 그러더라, 또 공부를 하러 간 모양이다.”

그리고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5. 독립만세운동

  내가 멋진 삼촌을 기다리는 것은 궁금한 게 많아서입니다. 삼촌은 모르는 게 없거든요. 뭐든지 내가 물어보는 것은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전에 동네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다 난리를 당했다지 뭐예요.

내가 다섯 살 때로 기억합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형과 같이 산에 토끼 올무를 놓으려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형에게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창호야, 오늘은 창민이랑 집에 꼼짝 말고 있어라.”

무슨 일이 있어요?”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할 일이 있으니 꼼짝 말고 집에 있어.”

어머니는 우리에게 다짐을 박듯 하고 마을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할 일없이, 얼마 전에 바짓가랑이를 찢으면서 캐온 칡뿌리를 찢어 잘근잘근 씹으며 집안에 있었지요. 달착지근한 칡 물이 침과 함께 목구멍을 적셔주었습니다.

아침 해가 동쪽 산을 뚫고 올라와 상수리나무 동산에 둥그렇게 걸려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마을 쪽에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총소리도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어른들은 이상하게도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누가 가까이 오면 입을 닫고 가버렸습니다.

어른들이 그러는 낌새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웅이는 뽐내며 말하는 것입니다.

창민아, 너 알아? 그때 만세 부른 날?”

아니, 몰라.”

그날 마을에서 들려오던 고함소리와 총소리를 들었을 뿐 그 이상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만세 부르다 난리가 났대. 일본 순사가 총을 쏘아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많이 상했대.”

그래서?”

그날 앞에 섰던 대장들은 다 잡혀가고 도망친 사람들을 잡으러 다닌다는 거야.”

?”

바보야, 일본 놈들 나쁘다고, 너들 나라로 돌아가라고 독립만세를 불렀다고 그러는 거지.”

나쁜 놈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누구에게도 이런 말 함부로 옮기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쉬쉬하며 쑥덕거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주재소 순사들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까만 양복에 둥그런 모자, 허리에 찬 긴 칼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내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문밖에 순사 온다.’하시던 할머니의 말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그 순사들이 세 명이나 우리 집으로 몰려왔었습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다짜고짜 마루로 올라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기둥을 잡고 떨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습니다. 할머니도 마당에 주저앉아 댓돌에 등을 기대고 정신을 놓았습니다.

보조원으로 따라온 성식이 삼촌이 일본순사들을 대신해서 어머니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집에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죄인들 숨겨주지 않았지?”

……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셨습니다.

누구든지 숨겨주거나 신고하지 않으면 감옥 가는 거 알지?”

순사들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도 큰소리를 치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머니는 그때마다 한숨만 쉬시며 다소곳이 운명처럼 당해내셨습니다.

 

 

 

6. 도깨비의 출현

  벼락구미 바위벼랑에 매달려서 봄이면 논두렁에 불을 지핀 듯이 붉게 타던 철쭉꽃이 흐르는 강물에 꽃잎을 띄우더니, 이제는 붉게 물든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름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강으로 산으로 싸돌아다녔습니다. 강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는 잔대를 캐 먹고, 개암이나 머루다래를 따먹었습니다. 이제는 논과 밭에서 양식을 거두어들여 앉아서 겨울을 나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삼촌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누군가 도깨비를 보았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지난겨울에 동네 아저씨들이 마을에서 야경을 돈 일이 있습니다. 화재도 예방하고, 도둑도 지킬 겸 순찰을 돌다가 도깨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웅이네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용호터 외딴 집, 바로 연준이네 큰집에 도깨비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창민아, 저기 저 집 있지?”

. 저기 저 집

그래. 저 집에 도깨비가 산대.”

그건 연준이네 큰집이잖아.”

그래. 저 집에 도깨비가 산다는 거야.”

거짓말, 사람이 살고 있는데 무슨……

그렇다니까. 연준이 큰어머니가 그러더래. 야경꾼들이 밤에 부엌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물어 보 았대. 그랬더니 밤마다 도깨비들이 시끄럽게 해서 못 살겠다고 하더래.”

그래서?”

그런데 시끄럽게 할 뿐 해꼬지는 하지 않는다는 거야.”

무섭다. 그치?”

착한 도깨비는 복을 준다니까 그 집은 복을 받을 지도 몰라.”

그 도깨비가 어쩌면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지난번에 만세를 부를 때도 도깨비들이 도와서 더 큰 피해를 막았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조그만 산골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어요?

이웃마을 고든골에는 호랑이가 자주 내려와서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호망을 치고 산대요. 칡넝쿨을 잘라다가 망을 엮어서 울타리를 치고 산대요. 밤만 되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문밖엔 얼씬도 못한다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도깨비는 양반인 셈이지요.

어머니! 요 위 벼락구비산 약수터에서 삼촌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대요.”

어느 날 형이 어머니에게 건넨 말입니다.

아니 누가 그러든. 도깨비라도 본 게로군.”

사람들이 그랬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어머니는 오금을 박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삼촌 소식이라도 알 수 있을까 귀를 세웠으나 삼촌은 아무래도 멀리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낙엽은 모두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흰 눈이 내리면 가지마다 소복한 눈꽃이 피겠지요.

도깨비들도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며 눈밭을 누빌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깨비만 떠올리면 삼촌이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삼촌은 키가 9척이고 힘이 장사랍니다. 삼촌 머리에 뿔이 하나 돋고, 커다란 눈이 얼굴 가운데 있다면 영락없는 착한 도깨비일거란 상상을 하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꿈속인 것 같았습니다. 안방 쪽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귓속말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간간이 다른 목소리도 섞이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비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집 어두운 다락에 숨어 지내기 힘들지요.-

-주인들이 워낙 잘 해 주니까요. 언젠가는 크게 보답을 해야지요.-

외딴 집 다락에 산다는 그 도깨비가 틀림없습니다. 그 도깨비가 드디어 내 꿈속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정말 착한 도깨비가 틀림없습니다.

-우리 본거지가 고든골에 있어요. 곧 피리골에 있는 장정들과 함께 모여서 싸워야지요.- -큰일 하시는데 몸조심 하시구려.-

-우리는 이미 목숨을 내놓은 걸요. 잃어버린 나라를 꼭 다시 찾을 거예요.-

정말로 정의로운 도깨비입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하네요. 이야기를 듣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 집 동남쪽은 서석면 생곡마을입니다. 그곳 깊은 골짜기 피리골은 횡성의 태기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깊은 골짜기는 옛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이 신라에 패하여 피해와 있던 곳입니다. 이 곳에서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이곳 피리골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태기왕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들딸을 데리고 구릿대(미나리과에 딸린 숙근초로, 구릿대란 이름은 줄기가 구릿빛이 감돌며 속이 비어있고 키가 큰 대나무 같아서 이르는 말임)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밤을 지새웠다하여 피리골이라 부릅니다. 신라군도 먼골과 배나무골에서 전투를 하며 이 구릿대 피리로 연락을 하며 싸웠다고 하니 구릿대 피리는 깊은 산속 어두운 밤에 중요한 전투수단으로 쓰였네요.

수년 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한 동학혁명군도 관군에 밀리면서 이곳까지 와서 싸웠대요. 그들도 구릿대 피리로 연락을 하며 싸웠다고 하니 이 골짜기에는 구릿대가 엄청나게 많았나 봐요.

동학군들은 서석면 풍암리에 와서 목숨을 걸고 관군과 맞붙었습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배수의 진을 친 것이지요. 불을 뿜는 전투로 맹렬히 싸웠으나 현대무기로 무장한 관군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800여 명의 동학군이 희생되어 진등고개에 묻혔다고 하니 그곳 800의총은 바로 그날의 아픈 역사랍니다.

삼촌도 그때 싸웠나요?”

그랬단다. 그때 풍암리 뒷동산 진등에는 동학군과 함께 이 마을사람들도 관군에 맞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단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이고 거기서 흐른 피가 자작자작하게 고였다고 해서 자작고개라고 불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냐.”

할머니의 주름진 목에는 굵은 힘줄이 벌렁거리고 움푹 들어간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습니다.

삼촌도 혁명군이 되어서 같이 싸웠지.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된다. 알겠지?”

할머니가 다그치듯이 일러두는 까닭을 알 것도 같아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7. 까막쭉배기 약수터

  삼촌은 시간 날 때마다 까막쭉배기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 중턱에 있는 약수를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고 했습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임꺽정 같이 큰 키에 힘이 장사여서 마을에서는 삼촌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삼촌을 참 좋아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따라다니면 삼촌은 귀찮아하지 않고, 무동도 태워주고 삼촌의 아들인 창복이와 같이 귀여워 해주었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궁금한 일이 있으면 삼촌에게 물어보는 것이 신났습니다.

까막쭉배기는 형을 따라서 토끼 올무 놓으러 다닌 적도 있고, 형이 나무하러 갈 때 따라갔던 일도 있지만 왜 거기를 까막쭉배기라고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궁금증을 삼촌이 풀어주었습니다.

삼촌은 솥뚜껑만한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까막쭉배기와 샘물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란다. 꼭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같은 이야기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수억 년을 지나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한때는 큰 홍수가 나서 마을 전체가 물바다가 되고 높은 산봉우리만 물밖에 나와 있었단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겠네요?”

아주 오래된 전설이니까 잘 모르지, 어쨌든 까마귀가 날아가다가 앉으려고 해도 모두 물바다라서 앉을 곳이 없었지. 마침 이곳 산마루가 물밖에 조금 나와 있고,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어서 까마귀는 그 소나무에 앉아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거야. 그 이후로는 벼락바위 산 저 봉우리를 까막쭉배기라고 부르게 된 것이란다.”

~ 그래서 까막쭉배기라고 그러는구나. 그냥까마귀동산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그럼, 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

또요?”

그래. 그 까막쭉배기 바로 아래 산 중턱쯤에 샘물이 있지. 그 샘물은 아주 영험해서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쳤단다. 이 소문이 전국에 알려져서 고질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지 않니. 서울에 사는 이름난 분이 병이 들어 가마에 실려서 왔는데 샘물을 며칠 마시고는 병을 고쳐 걸어서 돌아간 다음부터는 더 많이 알려졌단다.”

어떤 병이 낫는 데요

실꾸리를 풀어내듯 끝없이 이어지는 삼촌의 이야기에 끌려서 나의 궁금증도 자꾸 꼬리를 늘립니다.

그런데 말이다.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나 산신령이 싫어하는 음식을 먹고 샘물터를 찾으면 약물을 지키고 있던 신령의 뱀이 길을 막는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에 웅이네 집에 놀러갔다가 고깃국을 얻어먹었는데, 그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창민아, 우리 몸보신을 했으니 약수나 먹으러 갈까?”

웅이의 제안에 이끌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약수터가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산중턱까지 헐레벌떡거리며 기어올라 약수터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커다란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오금아 날 살려라하고 정신없이 뛰어내려왔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고기가 산신령이 싫어한다는 개고기였나 봅니다. 그 뒤로는 약수터에 간 기억이 없습니다.

 

 

 

8. 바위를 쪼아내는 딱따구리

 딱딱 따르르 ~”

요란한 소리에 놀라 일어난 형이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창민아 일어나 봐 밤나무에서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있나보다.”

나 졸려. 더 잘래.”

너 딱따구리가 나무 쪼아내는 거 못 봤잖아.”

나는 딱따구리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일로 깨우는 형이 미워서 시큰둥했습니다.

딱따구리가 뭔데?”

기가 막힌 새야, 색깔이 예쁜 새인데 나무를 쪼아 굴집을 만들고 있어.”

형의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형을 따라 뒷마당 밤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저기 봐봐. 저게 딱따구리야.”

예쁜 연미복을 입고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것 같았습니다. 몸 빛깔은 까마귀 같이 새까맣지만 정말로 예뻤습니다. 나무를 쪼아댈 때는 그 날렵함과 부리의 힘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밤나무 잎은 푸르고 밤꽃이 막 피어나려는데, 나무기둥에 꼬리를 붙이고 붙어서 나무를 쪼아대는 것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연신 주위를 살펴보고는 이상이 없다 싶으면 순식간에 머리를 내려박듯이 주둥이로 단단한 밤나무를 쪼아냅니다. 그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쌓이는 것만 보아도 대단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딱딱 따르르-”저런 속도로 쪼아댄다면 오늘 안으로 나무구멍을 다 뚫고 구멍 안은 자기네 집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딱따구리가 나무 파는 소리를 어제 웅이네 집에서도 들은 것 같습니다. 용호터 물굽이 강가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저 소리 같았거든요. 돌을 쪼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딱따구리가 나무는 쪼아 낼 수 있겠지만 바위를 쪼아낼 수 있을까요 .

웅이와 나는 의미 있는 눈짓을 나누며 조심스럽게 그곳을 향해 강둑길로 살금살금 내려갔습니다.

탕 탕 타 탁탁-”

저 멀리 물굽이 강가에서 딱따구리 그 소리가 분명히 들려왔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보자. 저기 뭐가 있는 것 같아.”

뭐가 보여?”

뒤 따라 오는 웅이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저기 저 바윗돌 밑에서 사람 머리 같은 것이 움직여.”

뭐지?”

탁탁 콕 콕콕-”

가까이 갈수록 좀 더 크게 들렸습니다.

까만 머리가 움직이며 바위를 쪼아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몸은 물속에 있고 머리만 밖에서 움직이며 바위를 두드리는 것이 혹시 물귀신이 아닐까요?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더 가까이 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앞서 가려는 웅이를 잡아끌었습니다.

, 그냥 돌아가자.”

왜 다 왔는데.”

그냥, 난 무서워.”

대낮인데 뭐가 무서워?”

그래도 난 갈래.”

나는 돌아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웅이도 졸래졸래 뒤따라옵니다.

얼마쯤 왔을까 그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계속 달렸습니다.

 

배고프던 여름도 가고, 낙엽을 떨어낸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떨고 있습니다. 이제는 강가에서 들려오던 딱따구리 소리도 사라지고 대신 저 멀리서 까막까치가 떼를 지어서 까막쭉배기 위를 빙글빙글 돌며! !’울어댑니다. 삼촌이 일본 순사에게 잡혀갔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우리 집도, 마을도 어쩐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쓸쓸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삼촌 걱정으로 애를 태우는 할머니를 모시고, 읍내 주재소 유치장에 갇혀있는 삼촌 면회를 가셨습니다. 어른들이 없는 빈집은 무섭기만 합니다. 이 깜깜한 밤에 형과 나란히 누워서도 삼촌이 걱정되어 장난칠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천정에 매달린 메주덩이만 바라보다가 문득 부처님 앞에 놓여있던 목탁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장삼을 걸치고 근엄하게 앉아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던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기도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도깨비님, 나쁜 짓도 안한 우리삼촌이 순사에게 잡혀갔어요. 제발구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나라를 찾아주세요. 꼭이요. 저도 착하게 살 거예요. ! 도깨비님!”

나는 거듭거듭 되뇌며 두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삼촌 같이 착하게 생긴 도깨비가 나타나서 웃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씨 좋은 도깨비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려나 봅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삼촌 면회 갔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어른들이 옆에 계시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나는 형 옆에 누어 잠을 청했습니다. 안방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소리가 꿈결처럼 아득합니다.

……지난여름에는 물굽이 바위에 글을 새겼다오.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글자 하나하나에 독립에 대한 염원을 새겨 넣었ㅈㅇ……

삼촌 목소리인 듯도 하고 아버지 목소리 같기도 한데 그 소리는 가물가물 멀어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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