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하여!
소설가 석 도 익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애완동물이나 화초식물 등 다양한 것에 애정을 쏟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조직폭력배 두목이 고양이를 옆에 두고 어루만지는 장면이나 난을 키우는 장면을 넣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그런 내면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아무런 조건도 없고 보답 또한 바라지 않고 무조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들은 하고 있지만 정말 그러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식구같이 키우는 애완견이 나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고 꼬리를 흔들고 매달리며 애정공세를 퍼붓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으르렁대고 짖기 만하고 가까이 가면 물려고 한다면 정나미가 떨어지는데 그래도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난을 키우면 꽃을 피우고 향기가 나야 하는데, 꽃도 피워주지 못하는 난이라면 오래 정성들이며 예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세상에 자기가 존재함으로 모든 것이 있는 것인데도 실상은 자기만을 사랑할 수가 없다.
내가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특히 일이 분업화된 산업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 내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공부, 내가 하고 있는 연구,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하는 일들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남을 위해서 하는 일들인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대충해도 되지만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잘 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묘한 거다. 내가 내 등을 긁을 수 없듯이 직접법 사랑이 아니라 간접법 사랑인 상대방 등 긁어 주기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이를 사랑 함으로서 내가 준 것 이상으로 되돌려 주길 바라는 확실한 계산적 사랑인 것이다. 주고 받는 손익 계산이 맞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그것이 늘어나면 싫어지고 더 커져 미움이 되며 미움이 굳어져 폭발하면 싸우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사랑 법이지 싶다.
조금만 사랑이 더 오는 듯 싶으면 사랑해요"를 자주하지만 작은 오해에도 장미 빛 질투에 가시로 찌르고 서로 사랑하다 돌아서면 동지 섣달 찬 서리 내린 살벌한 벌판을 비치는 그믐 달빛 같은 원한 서린 눈빛으로 서로를 미워하며 산다.
진정한 의미로 나를 위하여 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나를 사랑할 수도 없으면서 아집의 두꺼운 껍질 속에서 지독한 욕심하나로 살 바에는 차라리 그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 게 더 인간스러울 것이다.
내가 해야 할일을 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나를 위해서 할 일이 많이 없는 세상이라면 확실하게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또한 크게 행복한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