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익 <칼럼>

학교폭력의 근본적 대책

돌 박사 2012. 1. 15. 22:14

2012-01-15 오전 9:39:08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석도익 칼럼] 학교폭력의 근본적 대책은?



▲ 석도익 문인협회홍천지부장

 

백년미래에 꿈과 희망을 심고 키워 주어야하는 학교에서 날이 갈수록 암울한 사건이 봇물처럼 터지곤 한다.


아름답고 씩씩하게 커가야 할 나이에 폭력을 일삼는 또래패거리들의 왕따와 금품갈취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부푼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꽃 봉우리들이 있어 세간을 울린다.


학교폭력사건이 있을 때 마다 모두들 입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고 특단의 조치라고 내놓고는 있지마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심각한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밖에서 아무리 좋은 대책을 만들어 보호한다 한들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 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학교폭력이란 용어자체부터가 아니다. 일부 폭력학생들이 선량한 학생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여 일어나는 사건인데 어째서 학교폭력이란 말인가? 학교가 무슨 폭력을 휘두른단 말인가. 학생을 지칭해서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좀 상스러워 학교라는 이름에 뒤집어 씌워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학생이 폭력을 휘둘러도 학생이 한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한 것으로 대신하고, 앞길이 창창한 학생들을 너그럽게 보호하기위하여 두루 뭉실하게 넘어간 것이다. 이는 분명 학생폭력이라고 해야 하며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이다.


산업사회와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위한 정책은 교육에 제일먼저 투자되어 우수한 두뇌를 양산해야 한다는 논리로 인성이나 전인교육은 뒤로하고 경쟁우위교육만 치중하다보니 귀중한 인성이 결여되어 사람 같은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는 배우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님만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곳에는 사회의 퇴폐적인 유혹이 미치지 못하여야 하며 정치적이나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아야하며 법집행도 보호되어야하는 신성한 곳이어야 한다.


학생의 모든 행동은 선생님이 가르치고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고 학생자율에 의하여 자치활동을 하도록 지도하며 학칙에 따라 관리 운영되도록 해주어 교권이 확립되어야 제대로 된 학생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학교는 담장은 있으나 학생이나 선생님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가볍게 흔들고 각종 언론에서도 파리 떼처럼 휘젓다 알권리라 몰아치니 학생을 가르치고 훈계해야하는 선생님은 학부모가 두렵고 제자들이 겁나고 휴대폰이 무서워 말 안 듣는 학생은 그냥 포기하고 만다. 남자선생님이 적고 여자선생님이 많아지는 현실에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의 엄한 가르침이나 살뜰한 보살핌이 없고 학교에서도 생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학생들은 열등의식만 높아져 동병상련으로 뭉쳐진 패거리는 애꿎은 모범학생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며 많은 강연을 해오면서 청소년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된"사람이 되어야 하고 “든“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사람이 된 사람으로 자랐다면 다음으로 머리에 지식이 가득하도록 공부하여 든 사람이 되고  머리에 가득한 지식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앞장서 이끌고 베푸는 지도자로서 난사람이 되도록 교육정책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학생폭력을 학교폭력으로 돌리지 말자. 학생폭력은 제일먼저 부모의 책임이다. 자식을 사랑하되 사람이 되게 “된”사람으로 키워야하며 학교에서도 인성과 전인교육을 우선시 하지 않고는 학생폭력을 근절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안영근 기자(hci1004@hanmail.net)